눈씨
<쏘아보는 시선의 힘>
‘눈’은 사물을 보는 기구일 뿐만 아니라 사물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기구이기도 하다. 눈을 부릅뜨거나 치켜뜨는 것, 그리고 쏘아보는 것 등은 눈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상대를 쏘아보는 눈에는 힘이 들어가 있다. 쏘아보는 시선의 힘을 ‘눈씨’라고 한다. “눈씨가 맵다”라는 표현은 ‘시선의 힘이 매섭다’는 뜻이다.
‘-씨’는 ‘마음씨, 말씨, 발씨’ 등에 보이는 것과 같은데 ‘태도, 모양’의 뜻을 더한다. 이로 보면 ‘눈씨’는 본래 ‘쏘아보는 눈의 모양’이라는 뜻이다.
아사리
<질서가 없이 어지러운 상태>
‘아사리’는 토박이말 ‘앗다(奪)’의 어근 ‘앗’에 조사 ‘을’이 붙고, 그 아래 ‘이’가 붙어 ‘앗+을+이’가 되고, 여기에서 ‘아사리’로 바뀐 말이다.
곧 빼앗을 사람이 많으니 빼앗을 사람과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람이 한데 어울려 무법천지가 된 것을 비유한 말이다.
또 한편 덕망이 높은 스님을 ‘아사리’라고 하는데, 이 ‘아사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사리’가 많으면 다양하고 깊은 의견들이 개진되고, 토론하는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러한 모습을 피상적으로 보면 서로 자신들의 주장만을 앞세우기 때문에 매우 무질서하고 소란스럽게 비칠 수도 있다. 이런 연유로 무질서한 현장을 뜻하는 부정적인 말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하릴없다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하릴없다’를 ‘할 일없다’로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하릴없다’가 기원적으로 ‘할 일없다’에서 온 것이어서 두 어형을 혼동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나 ‘할 일없다’는 잘못된 말이다. ‘할 일없다’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할 일없다’에서 나온 ‘하릴없다’도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라는 의미를 띤다.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렸으니 꾸중을 들어도 하릴없는 일이다”에 쓰인 ‘하릴없다’에서 그 의미가 잘 드러난다.
그런데 ‘하릴없다’를 ‘하는 일 없다’로 해석하고 “하릴없이 앉아서 뭐 하니?”, “하릴없으면 집에 가서 애나 봐라”와 같이 쓰기도 하나 이는 ‘하릴없다’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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