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녀의 사랑과 성장
‘제니와 주노’라는 영화가 오래전에 개봉했었다. 헐리우드 영화 ‘주노’와 우리 영화 ‘제니와 주노’는 주인공 이름도 같고 10대의 임신이라는 소재 역시 같았다. 하지만 두 영화는 이야기 하고자하는 것이 달랐다. ‘제니와 주노’는 10대들이 태어날 아이에 대한 사랑을 낭만적인 재미로 보여줬다면 ‘주노’는 임신을 통해 10대의 문화와 성장, 사랑과 가족의 의미까지 담아낸다.
깜찍한 외모에 냉소적이며 엉뚱한 열여섯 소녀 주노(엘렌 페이지)는 두 달 전 순둥이 친구 블리커(마이클 세라)와 치른 ‘첫 경험’에서 임신을 하고 만다. 10대 소녀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곧바로 여성 센터에서 중절수술을 결심하지만 친구(레아)의 농담 같은 조언으로 아이를 낳아 좋은 부모에게 입양시켜 주기로 결정한다. 주노에게 새엄마와 이혼한 아버지에게 이 난감한 상황을 이야기 하고 천천히 일을 진행해가기 시작한다. 주노는 벼룩시장에서 양부를 찾아가고 만나서 스스로 입양을 준비한다. 처음에 난감해 했던 아버지와 새엄마는 결국 주노의 뜻에 따라 도와준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는 시점부터 1년 여간 사계절의 변화를 통해 영화는 전개된다. 주노가 임신을 통해 얻게 된 것은 배 속의 아이와 산고의 아픔만이 아니라 사랑과 가족의 의미이다. 첫경험의 아픔을 가져다 줬던 블리커와는 사랑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부유한 불임 부부 바네사와 마크 부부의 심각한 균열을 통해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 일이며 축복받은 일인지 알게 된다. 또 그것을 통해 아버지와 새엄마의 사랑까지 확인한다. 주노와 블리커가 마주 앉아 노래를 부르는 긴 엔딩 장면의 주노의 미소는 영화 전체를 따뜻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7개의 극장에서 시작된 인디영화였다. 16세 소녀의 임신과 입양이라는 다소 민감한 소재를 유쾌한 성장 드라마로 만들어내 ‘2007년의 영화’로 선정됐다. 단 7개의 극장에서 시작해서 2천여 개까지 스크린을 확대해 약250만 달러의 제작비로 1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올렸다.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흥행할 수 있었던 힘은 임신이라는 소재를 단지 고통스러운 10대의 악몽으로 만들지 않고 10대가 성장과 세상을 이해해가는 지혜와 과정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웃음과 발랄함이 있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평범한 10대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고, 한없이 가벼운 것 같은 10대들 속의 진지함을 잘 녹여냈다.
〈손광수 /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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