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고천암호 철새
전남 해남 고천암호(庫千岩湖) 철새도래지는 인공시설이 거의 없는 철새들의 낙원이다. 고작 망원경으로 철새들을 관찰하고 가창오리의 군무를 황홀하게 바라보면 된다. 탐조객 입장에서는 불편하지만 철새들에게는 경계심을 누그러뜨려서 좋을 것이다.
탐조여행이 늘어나면서 탐조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전망대와 탐조대 설치가 늘고 있다. 탐조시설을 친환경적으로 조성한다고 해도 새들에게는 경계의 대상물이다. 군산 금강철새조망대는 11층 높이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다. 지난해 낙동강 하구에도 에코센터와 함께 탐조대와 전망대가 들어섰다. 관광투어와 연계한 버스까지 등장한 곳도 있으니 철새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가창오리는 첫 기착지인 서산 천수만에 머물다 날씨가 추워지면 군산의 금강으로 이동하고, 금강마저 얼어붙으면 해남 고천암호로 날아와 겨울을 난다. 한반도 육지의 최남단인 해남에는 고천암호, 금호호, 영암호 등 3개의 호수가 있는 철새 도래지다. 황새와 저어새 등 천연기념물과 가창오리, 청둥오리, 기러기 등 30여종의 철새가 매년 11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 월동한다. 해남군은 올해 고천암호를 찾아온 가창오리는 30여만 마리로 추정한다.
가창오리는 이른 아침과 해질 무렵 일제히 비상해 대자연을 무대로 장엄하고 화려한 군무를 펼친다. “쏴아~” 갈대 숲을 훑는 바람소리를 내며 날아올라 창공에 거대한 수묵화를 그린다. 무리를 지어 비상하면서도 대오를 흩트리지 않다가 군무가 끝나면 허공에서 흩어진다.
가창오리는 이동 경로에 따라 이름이 바뀐다. 고향인 시베리아 바이칼 호 인근에선 ‘작은 오리’라는 뜻의 ‘바이칼 틸(baikal teal)’로 불리지만, 북한에선 뺨 모양이 태극무늬와 비슷하다고 ‘태극오리’라고 한다. 휴전선을 넘으면 앙증맞고 아름다워 가창오리로 불린다.
‘고천암호 파수꾼’으로 통하는 김정웅(71)씨가 탐조 포인트를 안내해준다. 12년째 보트를 타고 하루 세 차례 순찰을 돈다는 그는 낚시꾼들을 단속하고 쓰레기 버리는 것을 제지하고 버려진 그물을 걷어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다.
고천암호가 불법 어로로 몸살을 앓는 것을 보고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가창오리가 군무를 펼칠 때 한 무리를 5만여 마리로 추정한다. 몇 개의 무리인지를 보면 개체 수를 어림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철새들의 개체 수 파악과 생태까지 훤하게 꿰뚫고 있다.
고천암호는 1985년부터 2001년에 걸친 방조제 축조 공사 끝에 조성한 담수호다. 둘레 14㎞ 호수 주변의 무성한 갈대밭은 순천 대대포구와 함께 우리나라 최대의 갈대 군락지다. 바람이 불면 갈대끼리 빈 몸을 비비며 갈대의 노래를 합창한다. 호수 주변의 무성한 갈대밭은 철새들의 은신처 구실을 한다.
기름진 갯벌과 넓은 농토에는 오염되지 않은 먹이 감이 풍부하다. 또한 간척지주변의 기온이 따뜻한데다 중국에서 일본, 시베리아 알래스카에서 호주 뉴질랜드 사이의 가창오리 중간 기착지다.
해남군은 2002년부터 환경부 시범 사업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철새 도래지 인근 주민과 철새로 인한 농작물 손실을 보상해 주는 ‘생물다양성관리계약’을 체결하여 먹이를 제공하는 등 철새 서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철새들이 찾아오는 데 큰 몫을 한다. 철새와 인간이 만나는 가장 자연 친화적인 공간이 탐조시설 없는 해남 고천암호다. 〈이규섭/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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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오리 떼가 군무를 펼치려 비상하고 있다. (해남군청 제공)> |
<호수 주변의 무성한 갈대밭은 철새들의 은신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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