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01 격주간 제669호>
< Cinema&Video >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  아줌마들의 힘  ■

2004년 아테네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경기는 감동이었다. 역전 또 다시 역전, 유럽심판들의 텃세, 하지만 또 역전. 결국 동점으로 승부던지기에 들어갔다. 경기는 끝나지 않았지만 그들이 지칠지 모르는 투혼에 눈시울은 뜨거워져 있었다. 패하지 않을 듯했던 경기는 결국 패배로 끝났고 준우승을 했다. 하지만 경기 자체가 감동이었고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상상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후 스크린 위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란 제목으로 돌아왔다. 실제 스포츠 이야기에 한국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버무려서 만들어 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아줌마들의 고통을 가지고 있다. 미숙(문소리)은 남편이 빚에 쫓기는 되는 일 없는 아줌마, 혜경(김정은)은 이혼을 하고 딸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는 아줌마, 34세의 태극마크를 단 정란(김지영)은 불임에 고통스러워하는 아줌마다. 그리고 그 아줌마들이 자기들의 고통을 이겨내고 핸드볼 국가대표팀에 하나씩 합류한다. 바로 해외파 스타플레이어 감독 안승필(엄태웅)을 중심으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은 리얼리즘 영화를 고집스럽게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리얼리즘의 진실함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제로 배우들이 공을 다루어야 감정도 진실하다고 믿었던 임순례 감독은 배우들을 98일간 혹독한 트레이닝을 시켰다. 덕분에 코트에서 “컴퓨터 그래픽 없이”, “대역 없이” 그들만의 세트 플레이를 보여줬다. 영화 속에서 스포츠 영화의 화려한 영상이 주는 희열은 찾아 볼 수 없었지만, 실패한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의 질곡으로 가득했다.
바로 아줌마들의 고통스러운 이야기 속에 삶의 해학이 넘쳐난다. 중반 이후 40분에 달하는 프랑스와의 준결승전, 덴마크와의 결승전은 화려하지 않지만, 성실하게 쌓아온 인물들의 희열과 고통에 우리 모두 동참할 수 있다.
모처럼 시원하고 명쾌한 모습의 문소리, 로맨틱 코미디의 흔적을 버린 김정은, 대한민국의 아줌마의 모습을 십분 발휘한 김지영, 모든 인물들이 현실 속 인물들처럼 차근차근 감정을 이끌어 마지막 경기에서 폭발한다. 테크놀로지의 현란함 없이 진득하고 묵묵한 영화의 모습은 마치 한국의 아줌마들의 모습을 영화 속에 그대로 녹여놓은 듯 했다. 웃음도 울음도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줌마들의 진실한 힘이 영화에 더욱 강력한 생기를 불어 넣는다. 한국의 어머니들, 아니 전철이나 버스에서 자리를 빼앗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한국의 아줌마들의 힘을 어김없이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손광수 /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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