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01 격주간 제667호>
<이규섭의 생태기행> ‘철갑을 두른 늠름한 기상’

남산 소나무 숲

600년 동안 지성으로 돌본 남산 소나무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숱한 수난을 당했다. 일제는 1930년대 전국의 목재를 수탈하면서 남산 소나무도 베어냈다. 1925년에는 장충단공원을 조성한 뒤 그 일대에 벚꽃 수천 그루를 심어 우리 민족혼을 없애려 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숲은 폐허가 되다시피 변했다. 반듯한 소나무는 목재로 잘려 나갔고, 자잘한 솔가지는 서민들의 땔감으로 이용됐다.

 

<남산 소나무들은 온갖 수난과 공해 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남산을 푸르게 만든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소나무의 늠름한 기상을 노래한 애국가 2절의 귀절처럼 소나무는 민족혼이 담김 절개와 지조의 상징이다. 남산의 소나무를 만나러 가는 오솔길, 옷섶을 파고드는 바람 끝이 차지만 솔숲을 스치는 바람에 청청한 기운이 넘친다.
남산 소나무 숲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뒤편 북측 순환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소나무 숲 5000㎡ 사이에 200m쯤 되는 탐방로를 설치해놓아 관찰하기도 좋고 소나무의 생태와 남산 소나무에 대한 해설판은 이해를 돕는다.
울창하게 우거진 소나무 숲을 기대하면 실망이 크다. 구불구불 비틀리고 휘어진 소나무에 나무간격도 고르지 못하다. 장수의 갑옷 비늘 모양과 닮아 ‘철갑을 두른 듯’ 하다는 수피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어 볼품이 없다. 평균 수령이 30~40년으로 온갖 수난 속에서도 솔씨를 퍼트려 온 나무들이다.
간혹 쭉쭉 뻗은 소나무가 보이지만 몸통이 가늘다. 나중에 옮겨 심은 소나무들로 나무 간격은 일정하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내면서 주변에서 옮겨온 소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수령 100년 이상 된 거목 6그루는 보호수로 지정해 특별 관리한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가 내뿜는 각종 공해를 견디고 이만큼이라도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 주는 것만도 대견하다.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태조 이성계는 안산(案山)격인 남산이 푸르러야 왕조가 태평하다는 믿음 때문에 남산에 소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태종 때인 1411년 남산에 장정 3,000여명을 동원하여 소나무 100만 그루를 심었다는 기록도 있다. 세조 13년인 1467년에는 남산의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금송정책(禁松政策)을 폈으며 감역관과 산지기를 두어 남산을 관리했다고 한다.

<장수의 갑옷 비늘 모양과 닮아 ‘철갑을 두른 듯’ 하다는 소나무 수피.>

600년 동안 지성으로 돌본 남산 소나무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숱한 수난을 당했다. 일제는 1930년대 전국의 목재를 수탈하면서 남산 소나무도 베어냈다. 1925년에는 장충단공원을 조성한 뒤 그 일대에 벚꽃 수천 그루를 심어 우리 민족혼을 없애려 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숲은 폐허가 되다시피 변했다. 반듯한 소나무는 목재로 잘려 나갔고, 자잘한 솔가지는 서민들의 땔감으로 이용됐다.
지금의 남산골 한옥마을 자리에는 군부대가 들어섰고, 조선신궁, 동본원사 등이 잇따라 지어졌다. 남산 주변엔 ‘해방촌’으로 불리는 집단 거주지역이 생겼고, 외인아파트까지 들어서 남산의 훼손은 더욱 심각해졌다.
남산 소나무 숲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7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남산 전체를 입산통제구역으로 묶었다. 1991년부터 ‘남산제모습찾기사업’을 펴면서 전국 각지의 소나무 1만8000여 그루를 옮겨 원래 소나무 숲 옆에 심었다. 남산 토박이 소나무 3만1000여 그루를 포함하여 현재 4만9000여 그루가 뿌리를 뻗고 있다. 소나무 숲 면적은 43.5ha. 남산 전체의 17.7%다.
서울시 공원녹지관리사업소는 1968년부터 36년 동안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했던 남산 소나무 숲 일부를 2004년부터 제한적으로 공개한 뒤 남산 소나무 숲 교실을 열고 있다. 남산 소나무보호사업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지난해 11월에는 막걸리와 비료를 주는 작업을 펼쳤다. 오는 2월까지는 소나무 재선충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주사도 줄 계획이라고 한다. 남산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면 우리의 기상도 새롭게 펼쳐질 것이다.
 〈이규섭/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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