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01 격주간 제667호>
< Cinema&Video > 빌리 엘리어트

꿈을 찾아 벽을 넘는 소년

18세기 일어난 산업혁명은 영국을 최대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 시절 석탄은 산업혁명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20세기의 영국에서 석탄은 파업의 시발점일 뿐, 그 가치를 잃었다. 이미 쇄락한 탄광산업은 광부들과 고용주와의 갈등을 부축일 뿐이었다. 파업이 끊이지 않는 영국북부에서 이 지긋지긋한 마을을 벗어날 수 있는 아이들의 희망은 바로 권투뿐이었다.
11살 소년 빌리는 바로 가족의 해방을 위해서 할아버지의 오래된 권투장갑을 끼고 체육관을 찾는다. 그런데 그날 하필이면 체육관에 권투 교실과 발레 교실이 함께 열린다. 평소에 춤추기를 좋아했던 빌리는 권투를 하면서도 계속 발레 교실에 눈이 간다.
KO당한 빌리는 발레 교실 선생님께 열쇠를 주기 위해서 늦게까지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빌리는 발레를 배우고 있는 여학생들 틈에 끼여 있다. 타고난 몸이라고 칭찬을 하는 발레 선생님, 그리고 권투보다 자신이 발레에 훨씬 재능이 있고 재밌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빌리.
빌리는 권투를 접고 연말에 있는 왕립발레학교의 오디션을 목표로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다. 오디션이 있던 날 아버지는 빌리가 권투가 아니고 발레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결국 빌리는 오디션에 나가지 못한다. 그리고 영영 발레와 멀어지는 듯한 빌리.
그해 크리스마스 밤, 빌리는 낡은 체육관에서 친구와 함께 춤을 춘다. 동네 사람들과 술에 취해서 거닐던 아버지는 체육관 불빛을 따라 들어와 춤을 추고 있는 빌리를 본다. 결국 반대자였던 아버지는 빌리의 후원자로 변해서 왕립발레 학교에 빌리를 합격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빌리 엘리어트’는 남성성만이 자리 잡고 있는 탄광마을에서 다른 가치의 꿈을 찾는 이야기다. 영화 속에 나오는 수많은 벽처럼 빌리에게 권투가 아닌 발레는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존재였다. 마치 광산 노동자와 경찰의 벽처럼 말이다.
하지만 빌리는 그 벽에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있는 벽도 허물어지고,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에 있는 벽도 허물어진다. ‘빌리 엘리어트’는 빌리의 꿈을 다루면서도 사회 곳곳에 있는 넘을 수 없는 벽들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노동자와 고용자, 남자와 여자,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잘 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빌리가 권투를 접고 발레의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은 마치 사회의 수많은 벽들을 허물어 가는 희망 같다.
 〈손광수 /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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