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01 격주간 제665호>
<이야기 한자성어> 風聲鶴唳 (풍성학려)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라는 뜻으로 겁을 먹은 사람은 작은 일에도 놀란다는 뜻이다”

서기 383년, 전진(前秦)의 왕 부견은 강남으로 진출하여 천하를 통일해 보고자 직접 90만 대군, 즉 이름하여 백만 대군을 이끌고 동진(東晋)을 향해 남하, 신속하게 수양(壽陽 : 지금의 안휘성 수현 지역)을 점령하였다. 동진은 사석(謝石)을 정로장군(征虜將軍) 겸 대도독(大都督)에 임명하고, 사현(謝玄)을 전봉도독(前鋒都督)에, 사염(謝琰)은 중랑장(中郞將)에 각각 임명하여 8만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 전투에 임하게 하였다.
전진의 군대는 선봉장 부융이 이끄는 25만 대군으로 수양을 공략한 후, 기세를 몰아 협석을 포위하였다. 부견은 직접 정병(精兵) 8000명을 데리고 수양에서 전투를 지휘하며, 주서(朱序)를 동진 측에 보내 항복을 권유하였다. 본시 주서는 동진의 관리였다가 부견에 포로가 된 사람이었는데, 그는 동진의 진영에 도착하자마자 전진의 군사 기밀을 모조리 대도독 사석에게 말해 주었다.
사석은 이를 협석을 공격할 기회로 여기고, 맹장 유뢰(劉牢)에게 뛰어난 병사 5000명을 주어 기습하게 하였다. 그 결과 전진의 군대는 1만여 병사를 잃고 퇴로마저를 차단당하였다.
전진의 왕 부견은 패전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다. 그는 동생 부융과 함께 망루에 올라 동진의 진영을 살펴보았다. 동진의 군대는 포진(布陣)이 매우 가지런하였고, 사기가 높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리고 부견은 눈을 들어 멀리 팔공산(八公山)을 바라보다 초목들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동진의 복병들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전진의 군대는 비수를 따라 진을 펼치고 결전을 준비하였다. 이때 동진의 도독 사현은 사람을 보내 부견에게 비수를 건너가서 싸우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부견은 곧 사현의 요구를 받아들여 군대를 뒤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전진의 군대는 본시 여러 민족의 군인들이 모여 구성된 것이었기 때문에, 조직이 매우 불안하였을 뿐만 아니라 얼마 전의 패배로 이미 두려움에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전진의 군대가 막 뒤로 이동을 시작하자, 후방에 있던 부대들은 자기편들이 패배한 것으로 생각하고, 갑자기 흩어져 도망하기 시작하였다. 전진의 군대는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사현은 전진의 군대가 스스로 혼란에 빠지는 것은 보고, 병사들에게 강을 건너 그들을 추격하라고 명령하였다. 동진의 병사들은 부융을 추격하여 죽였다. 뿔뿔이 흩어진 전진의 병사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북으로 도망하였는데, 밤중에는 바람 소리나 학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모두 동진의 추격병으로 생각하고 혼비백산하였다. 부견도 화살에 맞은 채 낙양으로 돌아왔지만 얼마 되지 않아 죽고 말았으며, 전진도 곧 무너져 버렸다.
‘풍성학려(風聲鶴)’가 청각적인 착각이라면, 적을 두려워한 나머지 온 산의 초목까지도 모두 적군으로 보인다는 뜻의 ‘초목개병(草木皆兵)’이라는 말은 시각적인 착각을 말하는 것으로, 같은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바람 풍(風) / 소리 성(聲) / 학 학(鶴) / 울 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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