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현장 - 박 정 수 회원(충남 예산군4-H연합회) -
“제 전화번호가 011-9382-593*(口三 빨리 오구 사米 : 세 사람이 지은 쌀 빨리 와서 사 먹으세요)번입니다.” “농사지은 쌀을 조금이라도 쉽고 많이 팔기 위해 이 번호를 찾아 몇날 며칠을 헤맸습니다. 드디어 찾아내 나의 영구번호로 만들었습니다.” 며 번호를 찾아 서울 한복판을 헤맨 이야기를 들려주는 박정수 회원(충남 예산군 삽교읍 신가리 2구)의 활기찬 얼굴에서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
2002년 한국농업전문학교 식량작물과를 졸업하고 학교생활 전에 하던 논농사에 본격적으로 뛰어 든 박 회원은 현재 자신의 논 1만평 경작과 벼 육묘사업을 펴며 아버지의 농사 3만평도 거들고 있다. 육묘사업은 2만 5000상자로 한마지기 당 20상자(판)로 계산하면 30만평 분으로, 판당 2500원을 받고 있다. 4월에 중점적으로 일을 하는데 한창 바쁠 때는 일하는 사람이 40명까지 동원된다고 한다.
집념의 전화번호 영구번호 만들어
현재 한국농업전문학교 졸업생 모임 부회장을 맡고 있는 박 회원은 삽교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4-H활동을 시작했다. 일찌감치 영농에 뜻을 둔 박 회원은 회원 가입은 물론 국화기르기 근로장학생으로 3년을 보냈다. 4-H활동은 벼농사과제를 이수하며 활동을 펴 3학년 때는 학교4-H회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학교4-H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경진대회에 참가해 과제발표를 한 것으로 큰 상은 타지 못했지만 그 때의 발표 경험으로 대중 앞에 서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농사에 뛰어 들어 아버지의 농사를 돕던 박 회원은 보다 큰 뜻을 펴기 위해서는 전문학교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고 1999년 입학했다. 입학과 동시에 역시 대학4-H연구회에 가입한 박 회원은 고등학교와 지역의 4-H활동을 이어 갔고 농촌살리기 국토대장정 등의 행사에 참가했다. 또 학교 축제 때에는 4-H연구회에서 이웃돕기를 위한 하루찻집과 과제물 전시회에 적극 참여하여 활동 내용을 심화시켜 나갔다.
전문학교를 졸업한 박 회원은 영농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예산군4-H연합회에 가입하여 지역4-H활동을 재개했다. 농사규모가 너무 크고 바쁘다보니 임원은 맡지 않고 일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어려운 일과 표시나지 않는 일은 도맡아 해 온다. 예를 들어 연합회 공동과제포에 활용하도록 육묘 200판을 서슴없이 지원하는가 하면 콩시범과제포 조성작업에는 자신의 농기계를 모두 동원해 큰 도움을 주는 등 숨어서 회원들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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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재배 중인 녹미의 모습(왼쪽)과 예산군농업기술센터 김왕태 지도사와 함께 한 박정수 회원> |
연구용 쌀 ‘녹미와 적미’ 시험 재배
“올해는 일기가 좋아 1200평에서 첫 수확이 쌀로 24가마가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올해 농사는 풍년으로 봐야 합니다. 쌀값이 어떨지는 몰라도 기분 좋은 한해가 되겠네요.”라고 말하는 박 회원은 벼농사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각각 300평씩 찰벼인 녹미(綠米)와 적미(赤米)를 심어 시장성 등 다양한 각도에서 연구하고 있다. 녹미는 현미 부분(현미질)이 녹색으로 당뇨에 좋다는 기능성 쌀로, 날로 먹는 쌀이다. 밥을 하면 흰밥이 되는 성질로 인해 장난친 쌀이라는 오해도 받았다고 한다. 적미는 심장에 좋다하여 심장벼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는데, 이 역시 현미질이 붉은 색이다. 시장성만 있다면 언제라도 확대 재배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취재에 동행한 예산군농업기술센터 김왕태 지도사는 “농사를 즐기면서도 집념이 강한 회원입니다. 올바른 사고로 다른 회원들에게 도움을 주는, 무엇인가 주고 싶은 회원이 바로 박 회원입니다”고 말한다.
농사짓는 사람의 욕심이 다 그렇듯 넓은 토지를 갖는 것이 꿈이라는 박 회원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어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특히 기술센터 한상진 소장님은 아버님의 친구이자 저에게는 스승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식품공장을 운영해 보고 싶습니다”고 말한다. 모든 농기계는 다 다루며, 고장에 대한 수리도 직접 해결하며 땅이 얼어 작업을 못하는 시간까지 농기계는 쉼이 없다고 말한다. 취미는 등산. 평생을 벼농사와 함께한 아버지(박수동·60세)를 가장 존경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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