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01 격주간 제637호>
한글을 나라 상징으로

특별기고 - 김 영 명(한글문화연대 대표/한림대 교수) -

또 한글날이 지나간다. 그날이 되면 여기저기서 한글의 우수성이니 한글 창제의 원리니 하면서 부산을 떨지만, 하루가 지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글 학대에 여념이 없다. 한글과 우리말은 마치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와 같아서, 없어서는 못 살지만 그 고마움을 인정받지 못하는 소중하고 가련한 존재다.
글쓴이는 얼마 전부터 대한민국의 대표 상징물이 없다는 점을 아쉽게 생각하여 과연 무엇을 우리 상징으로 삼을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도무지 신통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이미 있는 것을 보니 깨진 기왓장이나 탈춤 출 때의 탈 정도였다. 5000년 문화유산이 고작 그것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석굴암, 불국사로 하자니 외국인이 보면 이게 중국 것인지 일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태권도, 김치로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미국이 권투나 햄버거를, 이탈리아가 스파게티를 국가 상징물로 삼는 걸 생각할 수 없듯이 말이다.
중국의 만리장성, 프랑스의 에펠탑, 일본의 후지산이나 벚꽃같이 우리나라를 상징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아름다운 설악산, 민족의 명산 백두산? 아무리 아름답거나 뜻 깊다 해도 분명한 상징성과 시각 이미지가 약하다. 태극무늬? 국기 무늬를 나라 상징물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게다가 솔직히 그 태극무늬도 원래 중국 것 아닌가?
고심을 거듭하면서도 글쓴이는 한글을 후보에서 제외하고 있었다. 글자를 국가 상징물로 삼는 것이 어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왜 안 돼?’하는 의문이 불현듯 들었다. 한글은 모두가 인정하듯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일 뿐 아니라 만든 이가 분명한 유일한 글자다. 그리고 한국의 모든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자랑스럽고 가장 뛰어난 창조물이다. 무엇보다 중국이나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한국임을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하게 독창적인 문화유산이다. 그래서 한글을 대한민국의 국가 상징물로 개발하여 퍼뜨리는 것은 나라 안팎에서 매우 적합하고 중요한 일이다.
지금까지 기업은 한글 죽이기에 바빴고 정부는 어설픈 영문 구호 만들기에 바빴다. 서울시의 ‘하이 서울’은 부끄러운 콩글리시고, 국정홍보처의 ‘다이내믹 코리아’는 선진 한국 이미지에 맞지 않다. 우리는 지금 너무 ‘다이내믹’한 게 문제인데, 외국인에게 그걸 알아달라고 선전하는 것은 시대에 어긋난다. 이제 우리도 개발과 건설보다는 성숙한 문화 이미지를 외국에 알리는 데 힘쓸 때가 되었다. 아직은 멀었지만 그런 자기 이미지를 자꾸 만들다보면 저절로 성숙하게 될 수 있다. 나라 구호나 국가 상징물도 이제 우리의 고유한 정신문명을 알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글이 그 중 으뜸가는 소재인데,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세련된 모습으로 가공하는가에 있다. 뜻있는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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