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01 격주간 제637호>
내가 본 4-H, 좋은 사람들의 모임

회원의 소리 - 김 영 대 회장(경북 영천군4-H연합회) -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4-H는 너무 단순한 궁금증만을 안겨준 채로 기억 속에서 잊혀져 버렸다. 내 고향 마을 두메산골 어귀에 반쯤 헤어진 페인트에 그려져 있던 네잎클로버와 지·덕·노·체, 그리고 그 밑에 그것이 ‘4H’인지 ‘나H’인지 적혀있던 글귀를 모르고 지나가버린 유년시절이었다.
내가 4-H를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것은 한국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병역특례로 산업기능요원에 편입하면서이다. 4-H노래도 서약도 아무것도 모른 채 야영교육에 참가했을 때는 끝이 없는 황당함과 프로그램마다 낯설음의 거부감으로 쉽사리 적응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부회장을 거쳐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내가 궁금해 했던 4-H가 뭐냐는 질문을 수없이 되받아야했고, 때로는 4-H를 소개하면서 ‘4-H가 뭔지 아십니까?’라는 질문에 ‘도를 아십니까?’라는 어투와 비슷한 어이없는 오해를 산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내가 아는 짧은 지식으로 충분한 설득을 시키고자 수없이 시도했었지만 얼마 전부터는 이렇게 소개한다. ‘좋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약 7년을 4-H에 몸담아오면서 내가 느낀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흙에 몸담고 흙을 가꾸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삶을 몸에 익히고 한데 뭉쳐 어우러져 그 젊음의 열정을 발산하는 모임, 세상의 비정함과 딱딱한 규율의 한 편에 심심한 인정과 순박한 마음 그대로를 만날 수 있는 풍요로운 모임이, 그 단체가 바로 4-H라고 생각한다.
이젠 두 달 남짓 영천시4-H연합회장의 임기를 남겨놓고 보니 지금은 사뭇 다른 감정들의 물결이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열악한 회원 수를 늘리기 위해 애썼고 부족한 재정 때문에 행사 진행에도 골머리를 앓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람 만나기를 즐기고 담소 나누기를 좋아하면서도 서른 명 남짓 되는 자리에 서기 위해 인사말을 준비한답시고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가벼운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추억의 하나이지만 그때는 모든 것 하나하나가 내게는 심각한 문제였고 고민거리였다. 그만큼이나 4-H에 대한 나의 정은 각별했고 지금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의 변화에 맞춰나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변화를 강조하며 여성4-H인, 직장4-H의 중흥, 학생회원과 일반회원과의 교류를 위해 힘쓰며 색다른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를수록 변화의 물결이 자연스레 4-H에도 접어들겠지만 단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 순수하고 고결한 원래의 취지는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4-H의 이념을 되살려 밝고 희망찬 4-H로 거듭나고 또한 영원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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