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종 헌 감사(경기도 안성시4-H지도자협의회)
|
<경기도 안성시에서 성창농원을 경영하고 있는 최종헌 지도자는 뿌리 깊은 4-H운동이 활짝 꽃피우도록 노력하고 있다.> |
“4-H운동은 뿌리가 너무 깊다. 뿌리가 깊은 만큼 꽃도 활짝 피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경기도 안성시4-H지도자협의회 최종헌 감사(52세)는 지금도 현역 4-H회원 못지않게 4-H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다. 현재 4-H의 상황을 휴면상태라고 진단하면서 4-H가 꽃을 피우는 것은 기성세대의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비단 4-H인뿐만 아니라 모든 일반인들을 포함한 기성세대가 4-H를 인정하고 4-H활동이 찬란히 꽃피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4-H는 범국민운동으로 추진돼야
“현재 시민단체에서 하는 환경운동이나 바르게 살기 운동, 새마을운동도 과거 4-H가 과제활동으로 모두 해왔던 일들”이라고 강조하는 최 지도자는 “4-H운동이 민간주도로 거듭나 다시 찬란하게 꽃을 피워야 될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4-H운동을 청소년기의 활동으로만 연령을 제한해서는 안 되며 4-H가 범국민운동으로 확대돼 올바른 시민정신과 국민정신의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 지도자는 또 4-H가 뿌리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줄기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집단의 자생력을 스스로 키워가야 한다는 것. 즉 자립기반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음으로 4-H청소년들이 그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비중 있는 일감을 줘야 한다고 한다. 질서계도나 꽃길가꾸기, 혹은 경제활동 등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고 보람을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일감을 줘야 한다는 것. 또한 농촌의 특성을 살려 도시민과 접목되는 활동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소득과도 연계되도록 해 회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이렇듯 4-H에 대한 뚜렷한 소신과 애정으로 후배들을 지원하고 있는 최 지도자는 영원한 청우4-H회 회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72년 처음 안성시 공도읍 용두리 청우4-H회에 입회해 4-H활동을 했다. 잊지 못할 기억으로 동네 꽃길을 조성했는데, 당시 동양TV에서 애국가가 나올 때 이 꽃길 전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최 지도자는 당시 그 꽃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회상한다.
1976년도에는 안성시4-H연합회장을 맡아 경기도4-H경진대회에서 안성에서는 처음으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최 지도자와 진은호, 홍상의 회원은 3총사로 불리며 열심히 활동했고, 이후 함께 공채로 농촌지도소(현재 농업기술센터)에 입사해 4-H육성에 힘썼다. 또 이 3총사가 주축이 되어 선·후배들과 함께 안성시4-H연맹을 조직하는 등 안성의 4-H맥을 잇고 있다. 최 지도자는 대학4-H회 시절 전국대학4-H연구회연합회에서 개최하는 ‘클로버 향연’에서 ‘한국4-H정립’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
<하우스에서 꽃을 돌보고 있는 최종헌 지도자.> |
22년간 4-H회원 육성에 심혈 기울여
1977년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후 22년 동안 안성과 여주, 성남 등에서 근무하며 후배들을 지도했는데, 가는 곳마다 도4-H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으로도 유명하다. 최 지도자는 1999년에 퇴직하면서 “이제 다시 청우4-H회장 직분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청우4-H회장 시절 공직을 시작했고 끝난 후에 다시 청우4-H회장으로 돌아가 평생 4-H의 뜻을 실천하며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화원을 경영하고 있는 최 지도자는 현재 13,200㎡(4000평) 6동의 하우스에 조경소재류, 초화류, 숙근류를 가꾸고 있다. 여기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모두 7명. 한국농업대학을 졸업한 큰 아들 영수 씨가 함께 돕고 있다. 또 작은 아들은 대학 관광학부를 전공하고 있는데, 이들과 함께 볼거리(최 지도자), 일거리(큰아들), 먹거리(작은아들)로 관광농원을 만들어 갈 계획이다.
최 지도자가 가꾸는 아름다운 꽃들처럼, 최 지도자가 함께 하는 안성시4-H가 최 지도자의 말처럼 찬란히 꽃피울 것으로 믿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