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15 격주간 제662호>
<時論> 신의가 떨어지

전 원 범(시인/광주교육대학교 교수)

세종 때 영의정이었던 황희 정승은 큰 고민이 하나 있었다. 그의 큰아들 수신(守身)이 낮은 벼슬자리에 있으면서도 학문에는 뜻이 없고 밤낮 기방(妓房)출입이 잦았기 때문이다. 학문에 뜻을 세워 정진하라고 여러 차례 타일렀지만 그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생각다 못해 황희 정승은 아들 수신을 불러놓고 “앞으로 또다시 기방출입을 하는 날이면 내 아들이 아니다”는 막말을 했다. 강경한 아버지의 태도에 아들은 어쩔 수 없이 다시는 기방출입을 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얼마 가지 않아서 무너지고 말았다. 예전처럼 외박하기 일쑤였다.
어느 날 아침 황희 정승이 막 문을 나서려는데 아들 수신이 기방에서 자고 들어오다가 마주쳤다. 황희 정승은 아들을 손님 대하듯 했다. 마루에 오르자 “어느 집 귀공자냐”며 공손히 먼저 절을 했다. 전번 아들과 약속한 말을 지키는 것으로서 기생집 출입하는 아들은 이미 자기 아들이 아니라는 뜻에서였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태도에 수신은 대경실색하여 잘못을 깨닫고 그 후로 학문에 전념, 벼슬이 점차 높아져 뒤에 영의정까지 올라 부자가 영의정을 하는 예를 보였다. 하찮은 말이라도 약속을 지킴으로써 인간적인 감화를 주게 된 이야기이다.
중국 진나라 때 높은 벼슬자리에 있었던 상앙이라는 사람은 당시 백성들에게 만연되어 있는 불신풍조를 크게 염려하고 있었다. 전국시대를 거쳐 오는 동안 백성들은 전란에 시달려 조정의 말을 우습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바로잡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불신풍조를 근절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생각다 못해 상앙은 한 가지 묘안을 짜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남문 쪽에 꽂아 놓은 장대를 북문 쪽에 옮기는 자에게는 백금(百金)의 상을 내리겠다고 방을 써 붙였다. 그러자 백성들은 ‘무슨 미친 짓이냐’고 비웃었다. 정부의 거짓 약속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상앙은 다시 상금을 이백금으로 올렸다. 그러자 한 사람이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며 장대를 북문으로 옮겼다. 그래서 상앙은 즉각 이백금의 상금을 내리고 이를 크게 홍보했다. 이 일이 전국에 알려지자 백성들은 조정을 조금씩 믿게 되었고, 조정에 대한 무조건적 불신은 하나씩 가시게 되었다. 그리하여 상앙은 정사를 순리대로 풀어갈 수가 있었다한다.
혼탁한 세상에서는 맨 먼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의가 떨어지게 된다. 자기 이익을 위하여 의리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사람, 허명을 좇아 본분을 잊고 날뛰는 사람, 친구를 죽여 제 출셋길을 닦는 사람 등이 많이 나오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런 배신의 행위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런 배신자들을 마치 똑똑한 사람인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까지 조성되기도 한다.
수범이 되어야 할 종교인이 그렇고, 국가경영을 책임진 정치인이 그렇고 모두가 제몫 챙기기에 이성을 잃고 있는 사회, 그 뒤에는 무엇이 올 것인가. 진정 그렇게 해서 얻어진 출세나 허영이 인생에 있어서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생각하면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은 약속을 지키는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부일언중천금(丈夫一言重千金)이라는 말이 다시 한 번 되새겨진다.
계절이 바뀌어 참으로 신록이 아름다운 때이다. 자연은 인간 세상과 달리 변함없는 약속으로 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년 이맘때의 약속, 그 신의(信義)를 지키는 것이 아닌가.
지난봄부터 열심히 4-H활동을 해온 4-H회원들만큼 자연의 순리를 잘 아는 청소년들도 없으리라 여겨진다. 농업과 농촌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지켜가며 자연과 인간 사랑을 실천하는 회원들이기에 신의를 잘 지켜 훌륭한 인재로 성장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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