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01 격주간 제661호>
<4-H인을 찾아> 4-H운동 활성화 위해 마지막 삶 불태울 터

구 수 학 사무국장(충청북도4-H후원회)

<지도직 공무원으로 4-H운동 발전에 힘써 왔던 구수학 국장은 충북4-H후원회 사무국장으로 재임하면서 4-H후원조직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마지막 남은 생활을 4-H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나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다보면 농촌의 활성화는 물론 농촌을 이해하는 지원세력이 보다 많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농촌지도공무원으로 재직하다가 남은 생활을 후배와 농촌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충북4-H후원회 구수학 사무국장(64·청주시 흥덕구 봉명2동)의 자신에 찬 얘기다.

공직 생활에서도 4-H에 큰 관심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후배4-H회원들을 돕는 4-H후원회에 몸담은 그 자체가 개인적으로 행복합니다”라고 들려주는 구 국장은 어려운 농촌의 현실을 생각하면 답답하지만, 그것을 위해 조금의 힘을 보탠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지난 1969년 11월 충북 괴산군농촌지도소(당시)에 첫 발령을 받아 공직생활을 시작한 구 국장은 30여 년간 농촌과 농업, 그리고 4-H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다 지난 2000년 후배들의 길을 터주기 위해 명예퇴직을 했다. 공직 생활에서 나름대로 부족했던 부분이 4-H회원들을 위한 일이었다고 결론을 내린 구 국장은 잠시 특기인 과수육종가협회를 창립해 1년간 활약하다가 지금의 4-H후원회(회장 오병덕)로 자리를 옮겼다.

4-H후원회 확대에 크게 기여

<공무원 시절 과수육종이 특기였던 구 국장은 기술원내의 많은 과수나무들을 돌보는 것도 큰 보람이란다. 사진은 복숭아나무 병해 상태를 살펴보고 있는 구수학 사무국장.>

기쁜 마음으로 생활에 임하는 구 국장은 부족했던 후원회원 영입에 발 벗고 나섰다. 처음 30여명이었던 회원이 구 국장의 노력에 의해 49명으로 확대됐고, 12억 7천만원의 후원기금조성에도 크게 노력했다. “4-H운동과 관련된 많은 분들이 4-H회원들을 위해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알뜰하고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라고 들려주는 구 국장은 영농회원 유통교육(70명)과 해외연수 및 국제기술교환훈련, 충북4-H인 화합행사, 한국4-H본부와 연계된 사업을 비롯해 충북에서 가장 큰 행사인 ‘충북4-H대상 시상식’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올해 28회를 맞는 4-H대상 시상식을 위해 취재 도중에도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후원회 봉사기간이 긴 것은 아니지만 후원회 회원이 늘어나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말하는 구 국장은 “공직생활 시절(청주시 농촌지도소) 북일면 우산리 무궁화4-H회를 전국 모범4-H 1등이 되도록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청주시농업기술센터에서도 3개였던 4-H회를 15개 조직으로 확대 조직한 것도 잊을 수 없는 일이란다.
‘감사할 줄 알자’, ‘떳떳하게 살자’란 좌우명으로 평생을 농민과 4-H인들과 생활해온 구 국장은 후배4-H인들에게 “‘인상이 변해야 인생이 바뀐다’는 평소의 생각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모범공무원 표창 2회, 도지사표창 2회 등을 받기도 한 구 국장은 한문과 붓글씨가 일품이어서 오랫동안 보고서(차드글씨)작성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농민단체들이 사용하는 충북농업인회관 전경.>
4-H 위해 열심히 봉사해

“지도직 출신 국장님이어서 4-H운동의 초창기부터 흐름을 알기 때문에 후배를 위해 더욱 심혈을 기울이시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여우연 충북농업기술원 4-H담당지도사는 “4-H에 대한 애정이 깊어 4-H후원회에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임하십니다”라고 들려준다.
여든 여덟의 어머니를 모시는 구 국장은 부인인 변해순 씨(59)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바둑 실력이 보통이 아닌 구 국장은 전국의 4-H인들에게 “지금은 분명 어렵지만 미래의 농업은 희망이 있다”는 얘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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