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01 격주간 제661호>
<지도현장> 4-H와 함께 한 10년

<성은아 지도사>
지도사로 첫발을 내딛은 지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니 참으로 많이도 변했다. 먼저 내 모습을 보자면 호리호리하던 아가씨는 간데없고 푸짐하고 포근한 인상의 아줌마의 모습이 되었고, 20대 앳된 총각이던 회원들은 내 모습을 따라 푸근한 아저씨들이 되었다. 농촌지도소라는 이름은 농업기술센터로 바뀌었고, 변하지 않은 것은 4-H라는 이름뿐인 것 같다.
처음에는 지도사로서 경험도 부족하고 4-H업무를 맡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아 글을 쓰는 것이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다 떠오른 기억 한 자락이 있었다.
지도사업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초년병 시절의 얘기다.
상담소장님 한분이 퇴직을 하게 되어 ○○면 상담소장으로 임명장을 받고 도착해보니 작은 앞마당에는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고, 사무실에는 커다란 명패가 놓인 책상만 덩그마니 놓여있었다.

4-H회원들과의 첫 만남

며칠은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이도 없어 답답하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상담소장님을 찾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내가 상담소장이라고 하니 처음엔 의아한 눈으로 보더니 이내 함께 논으로 가자고 이끄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가 보니 논두렁에 술이며 새참거리가 놓여있었고 벌써 한사람은 이앙기에 올라 모를 심고 있었으며 몇 사람은 모판을 나르고 있었다. 그날은 바로 4-H회원들이 모내기철이 끝나가도록 연로하셔서 미처 모내기를 못한 어르신들의 논에 모심기 봉사를 하는 날이었다.
회원들은 서로 무슨 말들인가 주고받더니 그 중에 제일 나이 많은 아저씨 한분이 - 이십대 후반이거나 서른을 갓 넘긴 듯한 - 상담소장님이 새로 오셨으니 신고식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분은 컵에 술을 가득 따르더니 나에게 권했다. 처음엔 술을 못한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결국 한잔 비우고 나니 여기서도 한잔, 저기서도 한잔 권하는 바람에 내 얼굴은 홍시처럼 붉어졌고 그 모습을 본 회원들은 한바탕 웃고 놀리면서 마음의 거리를 좁혀 갔었다.
그 후로는 무슨 일이든 4-H회원과 함께 했고 비로소 지도사업에 재미를 느끼고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변하지 않는 4-H

그때는 스무 살을 갓 넘긴 앳된 총각들이었던 회원들이 배필을 찾아 이제는 아이 둘 딸린 넉넉한 아저씨가 되기도 했고, 아직도 짝을 찾지 못한 회원은 이국땅의 처녀라도 아내로 맞을까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들도 지금은 나이가 서른이 훨씬 넘어 4-H활동은 하지 못하지만 4-H행사가 있으면 잊지 않고 선배로써 찾아주니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나도 그곳을 떠나 다른 지역에 상담소장으로 몇 년을 지내다 이렇게 4-H업무를 맡게 되었다. 십여 년 전에도 젊은이가 드물어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금보다는 나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나를 믿고 함께 하는 4-H회원들이 있어 힘을 내고 있다.
변하지 않는 4-H의 이름처럼 변함없이 흐르는 우리 회원들의 작지만 소중한 땀방울이 새롭게 도약을 꿈꾸는 4-H운동의 씨앗이 될 것을 확신한다.
 〈전북 정읍시농업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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