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15 격주간 제660호>
<이규섭의 생태기행> 야생화가 반기는 호젓한 오솔길

죽령 옛길 자연관찰로

신라 아달라왕 5년(158)에 죽죽(竹竹)이란 사람이 길을 열어 죽령이라 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실려 있으니, 약 1900년 전부터 사람들의 왕래가 시작된 셈이다. 삼국시대에는 군사적 요충지였고, 조선시대까지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 길에 나서는 영남지역의 선비와 관원, 장사꾼들이 개나리 봇짐을 지고 넘나들던 길이다.

<장승이 길손을 반기는 죽령 옛길 들머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던 옛길들이 도시민의 생태탐방과 트레킹 코스로 되살아나고 있다. 옛길은 선조들의 삶의 발자취와 얼이 서리고, 유무형의 유적들이 산재된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자연생태관찰의 중요한 길목이다.
노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여름 죽령 옛길을 걸었다. 죽령 옛길은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을 잇는 한양으로 가는 길이었다. 신라 아달라왕 5년(158)에 죽죽(竹竹)이란 사람이 길을 열어 죽령이라 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실려 있으니, 약 1900년 전부터 사람들의 왕래가 시작된 셈이다. 삼국시대에는 군사적 요충지였고, 조선시대까지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 길에 나서는 영남지역의 선비와 관원, 장사꾼들이 개나리 봇짐을 지고 넘나들던 길이다.
풍기읍 수철리의 한산한 간이역 희방사역을 끼고 10여분 오르면 천하대장군과 ‘죽령 옛길 자연관찰로’ 표지판이 길잡이 구실을 해준다. 옛길로 접어드니 우거진 잣나무에 잣이 탐스럽게 익어 간다. 숲과 흙이 뿜어내는 향기가 너무 싱그럽고 구수하여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심호흡을 해본다.
자글자글 끓는 한낮의 햇살에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차가운 계곡 물에 얼굴을 씻고 손으로 물을 떠 마시니 가슴이 서늘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골짜기라 오염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청정계곡 1급수에만 산다는 가재가 많은 곳이다. 이끼가 끼지 않은 바닥은 맑고 투명하다. 손바닥만한 자갈들을 조심스레 들춰보았다. 가재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쏜살같이 바위틈으로 들어간다. “게걸음도 빠르군” 혼자 중얼거렸다.

<참당귀가 복주머니 같은 꽃망울을 맺었다.>

호젓한 산길을 다시 걷는다. 벚나무, 개암나무, 신갈나무를 타고 오른 으름 넝쿨이 유난히 많다. 어렸을 적 따먹던 으름의 새콤한 맛이 생각난다. 숲 속에서 청아한 박새소리가 들린다. 작고 앙증맞은 텃새인 박새는 몸집이 큰 새가 나타나거나 인기척을 느끼면 위험의 경고음을 보낸다. 장끼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오솔길엔 야생화가 지천이다. 풀 섶에 원추리와 산나리가 그리움으로 길게 목을 뽑았다. 등나무 꽃송이를 닮은 칡꽃도 탐스럽고 싸리 꽃향기도 매혹적이다. 참당귀가 복주머니 같은 보라색 꽃망울을 맺었다. 늦가을이면 보라색 꽃술을 터트린다 계곡 부근에는 노란 물양지꽃이 무더기로 피었고, 꿀풀, 까치수염, 꿩의다리, 끈끈이대나물이 반긴다. 느티나무 주막집 터 부근엔 귀화식물인 개망초와 서양민들레가 주인행세를 한다. 희귀식물 왜솜다리(에델바이스)와 범부채가 많은 지역이지만 오솔길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2.5㎞의 옛길을 쉬엄쉬엄 걸어 죽령에 올랐다. 1시간 조금 더 걸렸다. 충북 단양 쪽 죽령 옛길은 5번 국도로 탈바꿈한지 오래다. 고개 마루 죽령주막에 들러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니 청산이 더욱 푸르게 보인다.
죽령에서 연화봉을 거쳐 소백산 비로봉을 오르는 등산로엔 천연기념물 제244호로 지정된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봄이면 철쭉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인다. 소백산국립공원은 지난 7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으로부터 2등급 공원으로 인증 받았다. 2등급은 생태계가 우수하여 자연상태로 유지할 가치가 큰 국립공원이다. 세계 각지의 자연지역은 6등급으로 분류하며, 지금까지 소백산국립공원은 관광지나 휴양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5등급이었다.
문화재청은 죽령 옛길을 비롯한 14개 옛길을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실사작업을 펴고 있다. 옛길 복원과 함께 자연생태계도 보존되어야 한다.
 〈이규섭/칼럼니스트〉

목록
 

간단의견
이전기사   청소년 소식
다음기사   4-H운동 60주년 의미 되새긴 축제한마당 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