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중 한편이라도 감동적으로 본 사람이라면 올 추석 봐야할 또 한편의 영화가 있다. 바로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이다. 치밀한 이야기 구조나 화려한 영상 보다 삶의 진실함에 다가가는 중견의 관록이 가득하다.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배꼽이 흔들릴 정도의 유머는 없지만 자막이 올라갈 때 쯤 행복에 감염된다.
은행을 퇴직 한 후 주식으로 돈을 날리고 선생님인 부인에게 용돈을 타며 살아가는 백수 기영(정진영), 카센타를 운영하며 두 아이와 아내를 캐나다로 보낸 기러기 아빠 혁수(김상호), 두 아이의 학원비와 마누라 등살에 낮에는 택배,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성욱(김윤식), 이들은 삶의 무게에 휘청거리며 살아가는 40대다. 더 나아질 일은 없고 더 나빠질 일들만 있는 이들의 삶에 꿈이란 이미 사치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상우의 부음을 듣고 장례식장에서 재회를 한다. 술 한 잔을 기울이며 20대 때의 꿈이었던 밴드 ‘활화산’을 기억한다. 밴드 멤버 중 꿈을 쪼ㅈ았던 유일한 친구 상우의 죽음을 계기로 이들은 다시 ‘활화산’을 재결성 한다. 하지만 이미 보컬인 상우는 죽었다. 그런데 그 피를 이어받은 아들 현준(장근석)이 합세하며 80년대에만 머물지 않은 2000년대의 밴드 ‘활화산’이 결성되고 홍대의 공연장을 찾아가 밴드를 하기 시작한다. 이혼 통보를 받은 혁수는 방황 끝에 돌아오지 않을 부인을 포기 하고 자신의 중고차 점포를 라이브 조개구이 집으로 개조해서 20대 시절을 꿈을 찾으며 영화는 끝난다.
‘즐거운 인생’은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와 가장 많이 닮았다. 퇴물인 가수가 지방 방송의 스타가 되는 퇴물 록커 이야기였다면, ‘즐거운 인생’은 무료하게 살아가던 네 남자, 퇴물이 된 40대가 20대의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예상할 수 있는 결말과 이야기 전개는 거의 흡사하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속에서 빛을 발하는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시선이 영화 곳곳에서 힘을 낸다. 꿀꿀하고 힘겨운 40대의 삶이 점점 유쾌하고 행복해진다. 웃기려 하지 않지만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울리려 하지 않지만 눈가가 촉촉해지는 이 영화의 힘은 바로 진실함이다. 모든 배우가 피나는 훈련으로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배우들 표정에 흥건하다. 잃어버린 꿈을 찾는 그들의 모습이 스크린 속에 있는 허상이 아니라 붐비는 지하철과 버스에서 마주친 듯 친근해서 그들이 음악에 감염되듯 우리는 ‘즐거운 인생’에 빠져들 것이다.
〈손광수 / 시나리오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