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5 격주간 제927호>
[이달의착한나들이] 난해하고 신비하고 비밀스런 숙제
- 충북영동 -
둘레길에 높이 세워진 웃음.

친구가 상을 당해 충북 영동엘 다녀왔다. 그녀는 녹음해 둔 아버지의 마지막 음성을 들려주었다. 목소리가 가물가물 꺼져가고 있었다. “얘야, 그동안 혼자 살게 해서 미안하다. 용서해라…(친구는 노처녀였다) 그런데 얘야, 이 산에서 버섯 따고 저 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깨보니 꿈이여….” 산사람이었던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우리 엄마도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임종 순간에 남동생 둘은 납골당 때문에 나가고 없었다. 엄마는 숨 줄을 붙들고 끈질기게 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엄마 귀에 대고 말했다. “엄마, 애쓰지 말고 그냥 가요. 나도 동생들도 결혼해서 잘 사니 엄마 할 일은 다 했어요. 내 말 들려요?” 내 말이 끝나자 엄마의 심장이 멎었다. 나는 아무도 울지 못하게 하고 침대 밑에 꿇어앉아 엄마 가슴에 손을 넣고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울고불고 하면 엄마 발길이 안 떨어질 것 같아서였다.
엄마의 얼굴은 신비했다. 찡그렸던 표정이 해맑게 개어있었다.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그날 나는 알았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생로병사 중 태어남은 기억조차 없고 죽음에도 무지하다는 걸. 황당하게도 내 인생에 시작과 끝이 빠져버린 것이다. 알맹이가 없는 조개껍데기처럼.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내가 풀어야 할 가장 난해하고 신비하고 비밀스런 숙제였다. 그러나 엄마는 고요하고 환한 침묵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엄마가 가시던 날 엄마 친구가 전화를 했다. 몸이 아픈 분이라 연락도 안 했는데 엄마가 가신 걸 알고 있었다. 몰라보게 홀쭉해진 엄마가 한복을 입고 냉동실에 쇠고기랑 필요한 거 있으면 가져가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한복을 입고 어딜 가냐고 했더니 묻지 말라면서 사라졌단다. 엄마는 어떻게 죽어서 친구를 찾아간 걸까.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가? 책의 저자는 현재 암 투병 중인 서울대 의대 정현채 교수다. 그는 죽음이 사방으로 꽉 막힌 벽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이며,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이라고 확신한다. 오늘날 사후세계나 체외이탈, 임사체험 등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의학적 영역이 된 지는 오래라고 한다. 물론 미신이나 환상으로 치부하는 학설도 있지만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은 숙제를 풀고 평화롭게 죽는다는 것이다.
나는 열린 마음으로 죽음을 탐구하고 질문하고 공부하려고 한다. 누가 알겠는가? 죽음이 친구처럼 새로운 비밀을 알려 줄지.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면 삶은 더욱 환하고 소중해질 것이다.
장자는 아내가 죽자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죽음은 계절의 변화 같은 것, 아내가 태어날 때 죽음도 태어났으니 삶과 죽음은 하나다. 그런데 왜 울어야 하는가? 나는 자식들이 내 죽음을 애통해 하지 않길 바란다.
나비는 애벌레의 껍질을 벗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다. 엄마도 병든 육신을 벗어 던지고 훨훨 날아갔다고 믿으니 웃음이 난다. 놀랍지 않은가? 가장 두렵던 것이 가장 가슴을 뛰게 하다니!
돌아오는 길, 영동 월류봉 둘레길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며 울던 친구에게 줄 내 마음이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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