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1 격주간 제924호>
[지도현장] ‘Learning by doing’을 실천하는 지도자
한 은 희 (충청남도4-H본부 사무차장)

인플루엔자가 유행하던 2009년 서울에서 가족들과 함께 ‘노년을 여유롭게’라고 호기 있게 외치며 충청남도에 귀촌 후 얼마간은 산골짜기에서 책보고 자연 속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아이들과 지내다 우연한 기회로 충청남도4-H본부에 입사한 지도 어느새 8년이 되었다.
‘세월이 流水(유수)’라는 말이 실감된다. 특히 첫 출근 날 사무실엔 책상(본부회장, 연합회장, 사무차장) 세 개와 컴퓨터 한 대, 테이블과 회의용 의자, 그리고 막 행사를 끝내고 돌아온 듯 너저분한 물품들과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서류 뭉치들. 본능적으로 청소를 시작했지만 쌓여있는 서류들을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정리할수록 점점 더 막막했던 그때부터 나의 4-H는 잔잔히 시작되었고, 업무를 찾아 배운다기보다 새로운 자료와 데이터를 만들어가는 무겁고 더딘 걸음마였다.
그 시절 무더위 속에 진행됐던 야영교육과 한마음대회, 청명한 가을에 치열했지만 즐거웠고 보람찬 중앙경진대회, 추운 겨울 지역을 돌며 함께한 봉사활동과 임원 워크숍 등 화합의 시간을 거치면서 점점 지도자, 회원들과 친분이 쌓였고 업무에도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회원들의 기대 때문이었을까? 내 욕심 때문이었을까? 회원들과 정신없이 토의하고, 계획하고, 밤새워 추진하며 해를 거듭할수록 사업을 위한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워커홀릭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그 안에서 변화하고 성과를 이뤄내는 충청남도4-H회가 좋았다. 그렇게 회원과 지도자가 하나가 되어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충청남도4-H회는 지난 7년간 많은 수상과 업적을 남겼다.
돌아보면 첫 발을 내디딘 2013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대외 수상이 내가 해야 할 과업이라는 생각으로 열정을 쏟았는데, 2년 전부터는 항상 틀에 박히고 일정한 방식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인데 항상 시간도 부족하고 바쁘게 진행되며 ‘나는 지금의 일을 잘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회원들이 나를 부를 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과연 회원들에게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자격이 되는가?’
외부에서 도본부 사무처 직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일반 ‘직원(간사)’으로 바라볼까? 아님 전문 자격을 가진 ‘전문 지도사’로 바라볼까?
‘처음 4-H를 시작할 때의 초심을 잊지 않고 나의 일을 즐기며 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수없이 질문을 해보았지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슬럼프였던 것 같다. 남들처럼 회사 가기 싫고 대인관계가 어렵거나 하진 않지만 한 가지 분명했던 건 4-H활동으로 인한 조직의 발전과 나의 직무능력 개발에 대해 의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4-H회원들이 그들의 생활과 사회 속에서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바람직하고 건전하며 온전한 상태로 성장·발전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충청남도4-H본부의 실무 책임자로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올바른 계획과 지도를 할 수 있는 전문 지도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좋은 것을 더욱 좋게’, ‘실천으로 배우자’라는 4-H금언처럼 변화하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지난 과거를 뛰어넘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7년 전 4-H를 처음 시작할 때 열정의 30대였던 나는, 4-H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동안 4-H와 함께 성장하며 ‘경험’의, ‘경험’에 의한, ‘경험’ 교육을 실천하며 충청남도4-H회가 회원 중심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지원활동과 충남4-H회만의 협동적 활동구조인 상생관계(win-win relation)를 바탕으로 조직과 회원, 그리고 나의 발전을 위해 지금도 계속 전진 중이다.
끝으로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새로운 일상’을 위해 “Learning by doing” 을 앞장서 실행하고 있는 전국의 모든 4-H지도자들께 감사하며 늘 4-H와 함께해주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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