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1 격주간 제924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여론을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

"공부는 시를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興於詩(흥어시)"
- 《논어(論語)》 중에서

공자가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시서역(詩書易)’이라 말하고 싶다.
시(詩)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의 노랫말을 뜻하고 서(書)는 역사를, 역(易)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뜻한다. 각각 책으로 말한다면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이라 할 수 있다.
시간으로 살펴보면 ‘시(詩)’는 오늘을, ‘서(書)’는 과거를, ‘역(易)’은 미래를 뜻한다. 역사가 과거를, 예측이 미래를 의미한다고 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지만 시(詩)가 현재의 시대상황을 말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공자가 가장 이상적인 국가로 생각했던 나라는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였다. 그렇기에 공자가 말하는 시(詩)는 주나라 시대의 시(詩)를 집대성한 《시경(詩經)》이며 점을 치는 책인 《역경(易經)》도 각 시대별로 따로 있었는데 주나라의 것이 바로 《주역(周易)》이다.
‘시서역(詩書易)’은 모두 세상을 바르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특히 시(詩)는 요즘과 그 의미가 조금 달랐다. 당시 주나라에는 민간의 노랫말을 수집하고 다니는 관리가 있었는데 이를 가리켜 ‘채시관(采詩官)’이라 했다. 글자 그대로 시(詩)를 채집하는 관리를 의미한다. 나라의 관리가 왜 민간의 노랫말을 채집했던 것일까. 민간의 노래를 통해 여론을 읽으려는 노력이었다. 태평성대에는 정치가 조화롭기 때문에 사람들의 노래가 평안하고 즐거운 반면, 어지러운 시대는 정치가 편향되어 사람들이 모두 괴로워하기에 노래도 원망스럽고 노엽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권력자는 당시 유행하는 노래를 통해 자신이 바른 정치를 펴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자는 주나라를 가장 모범적인 국가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채시관(采詩官)은 이후 사회가 혼탁해지며 사라지고 말았다. 오히려 여론을 조작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했으니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조선시대의 관찰사(觀察使)도 그 깊은 뜻을 따져보면 채시관(采詩官)과 다르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관찰(觀察)’이란 ‘관풍찰속(觀風察俗)’을 의미한다. 풍(風)은 노래를 뜻하고 속(俗)은 궁궐 밖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의미한다. 관찰사도 채시관처럼 여론을 파악하여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데 그들은 여론을 제대로 파악했을까?
“공자는 ‘공부는 시를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興於詩)’고 말했다. 공자는 왜 시를 이토록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시에는 그 시대의 시대정신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진솔하고 순수한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을 직접적으로 거칠게 말하는 게 아니라 부드럽게 돌려서 말하고 운율에 맞춰 조화롭고 아름답게 말한다. 머리뿐만이 아니라 가슴과 마음으로 젖어들게 하고 소통하게 만든다.”
송나라의 학자 정이의 말이다. 정이의 형인 정호도 시에 일가견이 있는 학자였다. 정호의 제자 사현도는 “선생님은 시를 분석하거나 해석하지 않고 다만 음미하고 이해하며 읊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는 과정 속에 저절로 마음이 움직여 느끼는 바가 생기고 그것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시를 분석하지도 해석하지도 않고 그대로 느낄 것을 강조하셨다”라는 글을 남겼다.
좋은 시(詩)는 여론(與論)을 담고 있다. 왜곡하지 않은 여론(與論)은 좋은 시(詩)와 같다. 여론의 흐름을 알고 싶다면 좋은 시를 음미하듯 함부로 분석하거나 제멋대로 해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소통해야 한다.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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