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5 격주간 제917호>
[지도자 탐방] 고품질 친환경·유기농과 평생을 함께 걷다

박 종 학 (강원 평창군 봉평4-H자원지도자)

박종학 지도자는 친환경농업에 대한 신념으로 평생을 농업에 몸담아 왔다.

포근한 날씨가 며칠 계속되더니, 찬바람이 몰아치던 세밑 어느 날. 서울에서 출발한 차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으로 달리고 있었다. 초행길인데다가 눈 덮인 고지대를 굽이굽이 올라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 농업이 살 길은 친환경농업밖에 없다고 믿으며 평생 외길을 걸어온 4-H인이 있다. 봉평면 무이리에서 4-H자원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종학 씨(80·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팔송로)를 만났다. 그는 강원도에서 나고 자라 봉평 일대에 친환경농업을 도입하고 자리 잡기까지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다.
박종학 지도자는 당시 진부국민학교 시절 선배의 소개로 4-H를 접하고, 오대4-H구락부를 조직했다.
“1953년으로 기억이 됩니다. 제가 진부 오대4-H구락부 회장을 맡게 됐고, 이후 평창군4-H연합회 초대 회장을 거쳐 4대 회장까지 회장직을 몇 년간 계속해서 맡았죠. 이후 강원도4-H연합회장에 도전했다가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도농업기술원에서 업적경진자료를 비교평가해서 후보자 중에 회장을 뽑는 방식이었는데, 자료를 몽땅 도난당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하소연할 데도 없고 너무 억울했죠.”
박 지도자는 우리의 척박한 농업환경에서 농민들이 나아갈 길은 친환경농업이라는 신념 하나로 평생을 버텨왔다. 쓰디쓴 실패도 여러 번 겪으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농업을 바라보는 눈은 더 넓고 사안의 본질에 다가서고자 하는 노력은 더 깊어졌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작물은 산나물 종류다. 명이나물, 눈개승마, 취나물 등을 재배하면서 각종 연구에 심취하기도 했다. 전국으로 친환경농업 강의도 많이 다녔다.
친환경농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친환경산채영농조합을 설립하면서부터다. 정부의 지원금도 받고,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밤낮없이 열심히 했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는 실패였다.
“나의 능력이 부족하고 덕이 모자란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 농업정책이 단기 지원에만 그치고 지속적인 후속조치는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성공사례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농민 입장에서는 당장 지원받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생산을 해도 판로나 소비가 막히면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죠.”
정부의 농민지원정책은 지원금 한 번 대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안착할 수 있을 때까지 최소 3~4년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농민들은 빚더미에 올라설 수밖에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
농촌 고령화, 농가인구 감소, 수입개방화 등으로 농업과 농촌이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농촌을 찾아오게 만들고, 여기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지 물었다. 농업을 소득이 보장되는 생명산업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청년지원정책을 쓸 수도 있고, 생산지원 중심의 보조정책을 발전시켜 생산이 소비와 연결될 수 있도록 구조화함으로써 농업소득을 늘릴 수 있도록 해주면 청년 아닌 그 누구라도 농업에 뛰어들지 않겠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이에 덧붙여 친환경 농산물 생산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이를 소비할 수 있는 수요 역시 창출해야 하는데, 이를 제도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급식, 병원 환자 급식, 기업 또는 공공기관 급식 등을 예로 들었다.
4-H를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을 배웠다는 박종학 지도자는 앞으로도 4-H가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데 지속적으로 기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동욱 기자 just11@4-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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