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01 격주간 제657호>
<이야기 한자성어> 狡兎三窟(교토삼굴)

“위급한 난관에 대처해 뒤를 준비해 두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

풍환(馮驩)은 제나라의 재상인 맹상군의 식객(食客)이었다. 풍환은 본디 거지였는데 맹상군이 식객을 좋아한다는 말에 짚신을 신고 먼 길을 걸어왔던 자다.
당시 맹상군은 설(薛:현재 산둥성 동남지방)에 1만 호의 식읍을 가지고 있었다. 3000명의 식객을 부양하기 위해 식읍 주민들에게 돈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도무지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구를 보내 독촉할까 궁리하고 있는데 1년간 무위도식으로 일관했던 풍환이 자청했다. 출발할 때 그는 “빚을 받고 나면 무엇을 사올까요?” 하고 물었다. 맹상군은 “무엇이든 좋소. 여기에 부족한 것을 부탁하오.”라고 대답하였다.
설에 당도한 풍환은 빚진 사람들을 모아서 차용증을 점검한 후 이자만 10만전을 받았다. 징수가 끝나자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맹상군은 여러분의 상환 노력을 어여삐 보고 모든 채무를 면제하라고 나에게 분부하셨소.” 그리고는 모아 놓았던 차용증 더미에 불을 질렀고 사람들은 그의 처사에 감격했다. 설에서 돌아온 풍환은“차용증서를 불살라 당신을 위해 돈 주고 사기 힘든 은혜와 의리를 사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했고, 이 말을 들은 맹상군은 매우 못마땅해 했다.
1년 후 맹상군은 새로 즉위한 민왕에게 미움을 사서 재상직에서 물러나자, 풍환은 그에게 잠시 설에 가서 살 것을 권유했다. 맹상군이 설에 나타나자 주민들은 그를 환대했다. 맹상군이 풍환에게 말했다. “전에 은혜와 의리를 샀다고 한 말뜻을 이제야 깨달았소.”, “교활한 토끼는 구멍을 세 개나 뚫지요(狡兎三窟). 지금은 한 개의 굴을 뚫었을 뿐입니다. 나머지 두 개의 굴도 마저 뚫어드리지요.”
그래서 그는 위나라의 혜왕을 설득해 맹상군을 등용하면 부국강병을 실현할 것이며 동시에 제나라를 견제할 수 있다고 했다. 혜왕은 보물을 준비해 세 번이나 맹상군을 불렀지만 그 때마다 풍환은 맹상군에게 응하지 말 것을 은밀히 권했다.
이 사실이 제나라의 민왕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민왕은 그제서야 맹상군의 진가를 알아차리고 맹상군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다시 재상의 직위를 복직시켜 주었다. 두 번째의 굴이 완성된 셈이다.
두 번째의 굴을 파는데 성공한 풍환은 세 번째 굴을 파기 위해 제민왕을 설득, 설 땅에 제나라 선대의 종묘를 세우게 만들어 선왕(先王) 때부터 전승되어 온 제기(祭器)를 종묘에 바치하도록 했다. 선대의 종묘가 맹상군의 영지에 있는 한 설혹 제왕의 마음이 변심한다 해도 맹상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이것으로 세 개의 구멍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주인님은 편안하게 지내십시오.”
이리하여 맹상군은 재상에 재임한 수십 년 동안 별다른 화를 입지 아니했는데 이것은 모두 풍환이 맹상군을 위해 세 가지 보금자리를 마련한 덕이다. 〈교활할 교(狡) / 토끼 토(兎) / 석 삼(三) / 굴 굴(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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