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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1 격주간 제91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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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故 조노제 인형 영전에 삼가 올립니다 |
김 도 식 (전 부산광역시4-H본부 회장)
경남 함안 원북 마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등지게 지고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던 소년에게 1960년대 초 어느 날 불어닥친 4-H의 폭풍. 그 4-H는 평범한 소년에게 비범을 초래하는 큰 충격이었고, 네잎다리 클로버의 우리 깃발이 온몸에 감겨오는 순간 그 마음에 지·덕·노·체의 불길이 치솟았고, 4-H활동, 이것이 나의 길이라 여겼으리라.
홍안의 소년은 어느덧 장성하여 함안군4-H연합회장, 경상남도4-H연합회장을 차례로 맡으며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한 선구자의 길목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헌헌장부로 돌아왔을 때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암담한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고, 농촌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도시로 가서 돈을 벌어야 가난을 탈피하고 부를 쌓아야 선구자의 길도 갈 수 있다, 4-H인으로 살겠다던 장부의 기개를 어기고 고향을 떠나는 형의 가슴에 찬란한 속눈물로 맹세했으리라.
부산 땅에서 말직 공원으로 시작한 고달픈 직장생활도 4-H인의 근면, 성실, 봉사 정신으로 이겨내고 회사에서 빛나는 실적을 쌓았습니다. 4-H를 떠난 지 23년, 긴 세월이 지난 후 그 시절의 향수를 쫓아 경상남도4-H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4-H운동의 횃불이 당겨지던 그 날의 함성을 마음에서 지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형은 지난날 못다 한 4-H활동현장에서 항상 4-H회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4-H운동은 훌륭한 후계를 육성해야 한다며, 후배들 지도에 물심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덕·노·체 깃발 아래 4-H노래를 함께 부르며, 경상남도4-H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열정을 쏟으셨습니다.
형은 4-H자원지도자로 경상남도4-H연맹 회장, 한국4-H연맹 부총재를 역임하셨고 경상남도4-H후원회 회장 재임 중에는 4-H 관련 3개 단체를 통합하여 흩어진 역량을 결집하는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통합조직의 경상남도4-H본부 회장, 한국4-H본부 부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칠순의 춘추에 지병을 얻어 향년 77세 되는 10월 22일 홀연히 세상을 뜨시니 유족, 친지, 동료, 후배들이 절규하는 영결 속에 원북산 산자락 함안 조씨 선영에 유택을 모시는 오늘의 슬픔 이를 데 없습니다.
한 조각돌에 새겨 형의 명복을 빌고 뜻을 기리며 유구한 세월 그 귀감을 염원함이며, 깎아놓은 돌덩이가 말할 리 없지만, 그래도 마지막 한마디 새기고 싶은 말은 “님은 영원한 4-H인이었습니다.” 고이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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