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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1 격주간 제9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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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권의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
‘인격 실격’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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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손해인 삶이 있을까? 평생을 방에 누워 있어야 하는 중대한 장애, 자식에게 밥 한 끼 먹이기 어려운 처절한 빈곤, 누구에게도 호감을 사본 적 없는 추한 외모나 다른 성적 지향... 이런 소수성을 안은 채 소외되고 배척당하며 자기 비하 속에 사는 삶이라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 책의 주요 모티프가 된 ‘잘못된 삶 소송’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며 장애를 진단해내지 못한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의 한 유형이다. 이 소송은 우리에게 태어난 것이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 손해일 수 있는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1급 지체장애인인 변호사 김원영은 성장기 내내 이 질문과 싸워야 했다. 가난한 집에서 걷지 못하는 몸으로 태어난 그는 자신의 존재가 부모와 이 사회는 물론, 스스로에게도 손해인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물어야 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흔히 ‘잘못된 삶’, ‘실격당한 인생’이라 불리는 이들도 그 존재 자체로 존엄하고 매력적임을 증명해 보이는 변론을 시도한다. 그의 변론은 사람들 간의 일상적인 상호작용에서 어떻게 인간에 대한 존중이 싹트는지를 탐색하며 시작한다. 이후 자신의 결핍과 차이를 자기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제시하며, 그렇게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개개인의 고유한 이야기가 법과 제도의 문에 들어설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나아가 모든 존재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특징과 경험과 선호와 고통을 가진 사람인지를 드러낼 무대가 주어진다면, 소수자들 스스로가 ‘인간 실격’이라는 낙인에 맞서 자신을 변론할 수 있으리란 전망을 제시한다.
이 책은 자신의 출생 자체를 부정하거나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특질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해 고통 속에 살지 않도록 모든 존재가 존엄하고 매력적일 수 있는 증거들을 수집해 작성한 한 편의 긴 변론서다. 저자는 한 인간의 결핍과 차이와 비참이 개인적인 체험에서 타인과의 상호작용으로, 법과 제도 속으로, 누구나 아름다울 수 있는 사회적 무대로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인정받기 위해,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 강하고 단단해질 수밖에 없는 소수자들이 결국 이 모든 일에 실패하더라도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일만큼은 놓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저자인 김원영은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를 탄다. 검정고시, 특수학교,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로스쿨을 졸업했다. 졸업 후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변과 중심, 또 사회학과 법학 사이를 진동하며 정체성과 장애인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고민해 왔고, 그 고민을 여러 매체에 글로 썼다. 지은 책으로 ‘희망 대신 욕망’이 있다.
〈김원영 지음 / 사계절 펴냄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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