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5 격주간 제909호>
[이달의 착한나들이] 매일 자유를 느끼며 사는 사람
그가 매일 바라보았을 바다.

전남 신안군엔 동소우이도란 섬이 있다. 그 섬을 알게 된 건 친구가 민박집을 산 덕분이었다. 목포에서 3시간 배를 타고 가면 꿈꾸듯 나타나는 작은 섬! 나는 그 섬에서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세상에 없지만 가끔 나를 찾아온다. 도시의 뒷골목이나 신호등 앞에 망연히 서있을 때 말을 건넨다. 너는 가슴 뛰는 일을 하며 사는가?
그 섬에 주민은 친구 부부를 빼면 노인 6명이 전부다. 친구가 산 집은 폐교를 수리한 집이었는데 그 옆엔 통유리로 바다가 훤히 보이는 집이 한 채 더 있다. 십수 년 전 서울서 온 부부가 폐교를 사서 살았는데 할아버지가 죽고 할머니 혼자 남게 되자 친구에게 이 집을 판 것이다. 친구는 폐교 안에 작은 방을 보여주었다. 방 이름은 ‘메모리얼 룸.’ 그 방엔 노인 부부의 사진과 손때 묻은 세간들이 있었다. 할머니가 언제든 오실 수 있도록 한 친구의 배려였다. 친구는 책 한 권을 건넸다. 그건 할아버지의 수필집이었다. 그들 부부는 둘 다 작가였다고 한다.
책에선 페이지마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나이 쉰여섯에 직장을 접고 꿈을 향해 이 섬에 온 개척자였다. 그는 근처에 있는 ‘죽도’라는 무인도에 야생동물을 풀어놓았다. 그의 꿈은 울창한 숲에 온갖 새와 짐승이 뛰노는 원시림을 만드는 것! 그러나 섬의 환경은 열악했다. 칠면조와 호로새와 산오리는 한 계절도 버티지 못하고 굶어죽었고 꿩과 공작새는 겨우 연명만 할 뿐 생산을 못하고 사슴은 예상외로 숫자가 늘어나 우여곡절 끝에 포수를 동원해 섬멸해야만 했다.
어렵게 배에 싣고 와 심은 종려나무, 노각나무, 메타쉐콰이어, 황칠나무 등 수많은 나무들도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손수 지은 원두막은 5년이 지나자 마루판이 썩어내렸고 엔진 고장으로 밤바다를 떠다니던 일, 선착장 모서리에 가슴뼈가 부러지던 일, 서툰 낫질로 손가락이 절반 날아갈 뻔했던 일, 마을 주민에게 배척당하던 일, 날벼락 같은 간암 수술과 종양 재발로 서울을 오르내리며 11번의 시술을 받은 일 등등 그의 삶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결같이 가슴 뛰는 일에 도전했다. 실패엔 사람을 강하고 깊게 만드는 위대한 힘이 숨어있다.
그는 죽음도 스스로 선택했다. 미리 유산과 장례절차를 적어 아내와 자식에게 보내고 확인을 받았다. 그리고 죽을 적기라고 생각했을 때 일체의 치료와 음식을 거부하고 죽었다. 그건 또 다른 죽음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는 암과 싸우면서도 통유리로 바다가 보이는 집을 지어 마지막 꿈을 완성했다. 사람들이 물질의 노예로 살아갈 때 사슬을 끊고 섬으로 온 사람. 무인도에 새와 사슴을 풀어 놓았던 사람. 젊은 시절 오대양을 보기 위해 해양대학을 선택했고 지극히 아내를 사랑했던 사람. 그는 보기 드문 자유인이었다. 그가 남긴 글이다.
“나에게 자유는 궁극적으로 내 영혼과 자연의 합일이다. 수평선에 뜨고 지는 해를 바라보고, 광년을 건너온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그 장엄함과 신비함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내가 매일 새벽 매일 저녁 매일 밤 느끼는 자유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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