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5 격주간 제905호>
[지도자 탐방] 4-H 통해 습득한 ‘끼’로 즐기며 살아요
정 창 영 회장 (충북 단양군4-H본부)

마지막 여생의 ‘즐거움’을 청년농업인4-H회원 수 확대에서 찾고 싶다는 정창영 단양군4-H본부 회장.


‘知之者(지지자)는 不如好之者(불여호지자)요, 好之者(호지자)는 不如樂之者(불여락지자)니라.’
공자의‘논어’에 나오는 말로‘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우리 주변의 4-H지도자 가운데 이 경구(警句)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매사 즐기며 살아가는 정창영 단양군4-H본부 회장(71·충북 단양군 대강면 두음3길)을 만났다.
정창영 회장이 얼마나 삶을 즐기면서 살아가는지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건넨 명함에서 실감할 수 있었는데, 명함에 기재된‘가수인증, 전국실버가요제 입상 정창영’이라는 문구가 바로 그것이다.
‘2016년 전국사랑나눔 실버가요제’에서 입상하여 (사)한강문화복지회 정관에 의거 공식적으로 가수인증을 받은 정 회장은, 요즈음 단양 관내 또는 타 지역의 축제 및 행사에 가수로 초대받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정 회장이 정식 가수로 공연한 횟수만 60여 회에 달한다고.
정창영 회장의‘끼’는 청소년 시절 4-H과제활동 가운데 하나인 오락경진을 통해 갈고 닦았단다. 1967년 충청북도4-H연합회장을 끝으로 4-H활동을 마감한 정 회장은, 이듬해인 1968년 대강면사무소를 비롯 여러 면사무소를 거쳐 1998년 대강면 부면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30여 년간 공직생활을 영위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공직에 있을 때도 정창영 회장의 끼는 유감없이 발현되었는데, 취재에 함께한 이웃 주민에게서 그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정창영 회장은 면사무소 총무계장 시절 계장이라는 직책보다‘아나운서’로 더 유명했습니다. 어린 시절 4-H활동을 통해 습득한 끼를 십분 발휘하여 각종 체육대회나 동네잔치에서 뛰어난 진행 실력을 뽐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0년 전인 1959년에 네잎클로버의 향기를 처음 맡은 정창영 회장은 회원 시절 다양한 4-H활동을 경험한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든든한 자산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마을 형들의 권유로 만 10세 때부터 4-H활동을 시작한 정 회장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마을의‘두음4-H구락부’창립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정창영 회장이 4-H회원으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의 단양군4-H는 전국은 고사하고 도내에서도‘4-H 변방’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정 회장의 열성적인 활동에 힘입은 단양군4-H는 1964년 충청북도4-H경진대회에서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해 도경진대회 웅변부문 1등과 4-H중앙경진대회 산림과제부문에서 입상을 한 정창영 회장. 이듬해 1965년 도경진대회 연시부문 1등과 4-H중앙경진대회 뽕나무밭만들기과제부문에서 연거푸 입상하는 쾌거를 올려 단양군4-H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 앞장섰다.
현재‘가수 활동’과 더불어 천직인 농사에도 소홀하지 않은 정 회장은 마늘 2,640㎡, 고추 990㎡, 콩 2,640㎡를 각각 경작하고 있었다.
특히 1993년에는 아내의 적극적인 내조로‘전국 콩 증산왕’을 차지한 이채로운 이력을 갖고 있었다.
“충실한 종자만을 선별해서 배노람 수화제 100g을 씨앗 전체에 묻도록 골고루 소독한 후 10a 당 1,500㎏의 비료와 고토석회 120㎏을 살포했습니다. 그리고, 로타리를 친 뒤 콩 전용복비 50㎏을 섞어 경운 정지작업을 했습니다”라며, 26년 전의 일을 또렷이 기억해내는 정창영 회장.
“여기에 비닐멀칭을 한 후 씨를 파종했으며 7월 하순부터는 콩이랑 헤쳐주기를 6회 정도 실시했고, 통풍은 물론 수광상태를 좋게 해 등숙이 양호하도록 힘썼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정 회장은 이 같은 경종법을 본인 혼자만 알고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웃 주민들에게 보급해 마을 농가 소득 향상에 이바지했다. 이와 같이 과학영농과 공동체 의식 실천에 앞장선 정창영 회장은 2001년 제11대 대강농협조합장으로 선출돼 4년간 지역 농업·농촌 발전을 위해 헌신하기도 했다.
취재 끝 무렵, 고령화가 지속되고 있는 작금의 농촌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고 토로하는 정창영 회장. 이를 개선하기 위해 청년농업인4-H회원 수 확대에 공헌해 마지막 여생의‘즐거움’을 찾고 싶다는 그의 더 큰 행보를 기대해 본다.
 정호주 기자 skyzoo74@hanmail.net

1967년 충청북도4-H경진대회에서 수상자 대표로 답사하고 있는 정창영 회장(사진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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