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5 격주간 제905호>
[이달의착한나들이]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본다

어둠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감자들.
아는 분 중에 농부 시인이 있다. 그분은 해마다 7월이면 지인들을 초대한다. 명목은 감자 캐기! 올해도 우리는 경기도 광교에 있는 그분의 농장으로 몰려갔다. 밤꽃 향기 자욱한 농장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호박과 오이는 줄기에 매달려 젖을 빨고 수박은 바닥에 배를 깔고 딩굴거리고 있었다.
농장을 둘러 본 뒤 우리는 감자 밭으로 갔다. 푸른 잎들로 덮여 있는 감자밭. 감자는 다른 작물과 달리 사연 많은 사람처럼 땅속에 숨어 있었다. 조심스레 흙을 파헤치자 줄기에 매달린 감자들이 줄줄이 달려 나왔다. 느닷없이 햇볕으로 끌려나와 얼떨떨해 하는 감자들! 그 모습을 보며 오래전의 나를 떠올렸다.
내 고향은 강원도다. 서울로 전학 왔을 때 아이들은 나를 감자바우라고 놀렸다. 나는 서울이 두려웠다. 내 사투리에선 투박한 흙냄새가 났고 서울 아이들에게선 쨍한 햇볕 냄새가 났다. 서울 아이들 얼굴은 눈부시게 희고 내 얼굴은 검었다. 당시 고향 친구들에겐 내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멀어졌다. 내가 서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 이유로 나는 감자바우가 되었고 촌뜨기가 되었으며 외톨이가 되었다.
나는 세계적인 명화 밀레의 〈만종〉을 좋아한다. 남들처럼 평화로운 풍경이 좋아서다. 하늘이 붉게 물드는 일몰의 시간, 멀리 교회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들판에 서서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 일을 끝낸 그들은 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따듯한 식사를 한 후 행복하게 잠이 들겠지. 그런 상상을 하면 내 안에도 삶의 따듯한 에너지가 차오르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보이는 것만 보는 인간의 어리석은 소치였다.
만종엔 삶의 이면인 죽음이 숨겨져 있다. 그걸 발견한 사람은 20세기 최고의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루브르박물관’에서 〈만종〉을 처음 본 순간 그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달리는 기도하는 부부의 발아래 놓인 감자 바구니가 죽은 아기의 관이라고 주장했다. 그 뒤로도 달리는 〈만종〉을 볼 때마다 불안감에 시달렸고 〈밀레의 만종의 비극적 신화〉라는 책까지 써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지만 당시 그의 주장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수십 년 후, 현대 과학으로 인해 달리의 투시력이 환각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만종〉을 적외선 투사를 한 결과 감자 바구니가 초벌 그림에서는 죽은 어린아이의 관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당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숨진 아기를 묻으려고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을 밀레는 사실적으로 그렸으나 주위의 권유로 지금처럼 수정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고 한다.
나는 이제 만종을 볼 땐 감자 바구니부터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들 부부가 아이를 묻고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과 그들이 가야 할 어둡고 긴 길을 떠올린다.
얼마 전 친구의 딸이 심각한 우울증으로 입원을 했다. 언니 결혼식 날, “다음은 제 차례예요”라며 우리를 웃게 했던 풋풋하고 해맑은 아가씨. 나는 감자를 캐며 생각한다. 묻혀있는 감자처럼 누구에게나 보이지 않는 아픔이 있다는 걸.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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