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지 말고 거침없이 진실을 말하라
勿欺也 而犯之(물기야 이범지)"
- 《논어(論語)》 중에서
‘진퇴현은(進退見隱)’은 공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 중에 하나다. ‘진퇴현은(進退見隱)’이란 앞으로 나아가거나(進) 뒤로 물러서고(退), 남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거나(見) 물러나 숨어 있는 것(隱)을 뜻한다. 앞으로 나아가거나 몸을 드러내는 것이 좋은 것이고 뒤로 물러나거나 숨는 것이 나쁘다고 하는 게 아니다. 상황에 따라 적절히 해야만 한다고 충고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나아가고 드러내며 언제 물러나고 숨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 공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면 모습을 드러내고(天下有道則見) 그렇지 않으면 숨어서 지내야 한다(無道則隱).”
세상이 어지러울 때에는 숨어 있다가 세상이 안정되면 나타난다는 것은 얼핏 들으면 기회주의자의 처신처럼 느껴지는 말이 아닌가. 앞뒤를 잘라내고 일부분만 보면 정말로 그렇게 느껴진다. 그러나 전체를 살피면 그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실하게 학문을 갈고 닦으며 올바름을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篤信好學 守死善道). 위태로운 곳에는 가지 말고 반란이 일어난 곳에도 가지 않는다(危邦不入 亂邦不居).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면 모습을 드러내고(天下有道則見) 그렇지 않으면 숨어서 지내야 한다(無道則隱).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천한 위치에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邦有道貧且賤焉恥也) 세상이 엉망임에도 불구하고 부자로 살거나 높은 자리에 있는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邦無道 富且貴焉恥也).”
방점은 어디에 찍혀 있는가. 열심히 공부하여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게 첫걸음이다. 올바름에 대한 판단이 섰다면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투쟁하여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면 그것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투쟁했음에도 불구하고 뜻을 이루지 못했다면, 그래서 세상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다면, 목숨을 걸고 싸우거나(守死善道)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숨어서 지내라는 뜻이다. 그들에게 아부하며 자신이 갈고 닦은 실력을 팔아먹지 말라는 뜻이다. 이를 어찌 기회주의자의 말이라 할 수 있겠는가.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와 공자의 대화에서도 이러한 공자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자로가 ‘왕과 함께 나랏일을 할 때에 어떻게 하는 게 올바른 것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欺)하지 말고 범(犯)하라(勿欺也 而犯之).”
‘기(欺)’는 무엇인가. 속이는 것을 뜻한다. 누구를 속이는가. 임금을 속이고 스스로를 속인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임금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범(犯)’은 무엇인가. 상대방의 의견을 거스르며 공격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물기야 이범지(勿欺也 而犯之)’는 “속이지 말고 거침없이 진실을 말하라.” 정도가 될 것이다.
오늘날 최고의 권력자는 누구인가. 국민들이다. 국민들 앞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일삼는 자는 누구인지 살펴보자. 국민들이 인정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물러나 조용히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앞으로 나와 거짓으로 선동하는 자는 누구인지 살펴보자.
상황에 따라 적절히 ‘진퇴현은(進退見隱)’하는 사람과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판단하는 눈을 지녀야 한다.
이도환 /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