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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5 격주간 제9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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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착한나들이] 5월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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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공존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 |
얼마 전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하려 하자 종업원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으로 가보니 유리박스 속에 팔이 하나뿐인 로봇이 있었다. 나는 낯선 세상에 던져진 이방인처럼 로봇의 눈치를 살폈다.
로봇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번호를 누르자 입력된 매뉴얼대로 긴 팔을 움직였다. 연한 커피를 부탁할 수도, 한꺼번에 4잔을 주문할 수도 없었다. 계산도 오직 카드만이 가능했다. 더듬거리며 커피 3잔을 받아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나머지 한 잔은 20분 후에나 마실 수 있었다. 에러가 난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농업, 산업, 과학혁명으로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그러나 혁명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한 성찰은 늘 미진하다. 이제 곧 수많은 사람들이 로봇에 밀려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로봇은 점점 더 영리해져 커피를 연하게 타주고 농담도 할 것이다. 영국의 AI전문가 데이비드 레비는 2050년이면 인간과 로봇의 결혼이 일반적인 현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알파고의 바둑 능력은 이세돌 구단을 뛰어넘어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지만 바둑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승리의 기쁨, 패배에 대한 불안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30~40년 후면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협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도 했다. 인간에겐 의식주나 생로병사가 있지만 로봇에게는 없다.
타이타닉호 참사에서 살아남은 래히틀러 씨의 회고록을 읽은 적이 있다. 일등석에 타고 있던 ‘메이시스 백화점’의 주인 부부는 첫 번째로 구명정에 탈 수 있었지만 스스로 배에 남는다. 남편이 여자와 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자 그걸 본 아내는 스스로 구명정에서 내려와 남편에게 말한다. “당신이 어딜 가든 그곳이 어디든 나도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는 하녀에게 양보하고 모피코트를 벗어준다. “사랑하는 우리 딸 추우니 이걸 입으렴… 나는 이제 옷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구나.” 훗날 하녀 엘렌 버드는 당시를 회고하며 도무지 사랑과 헌신이라는 말밖에, 다르게 표현할 길이 없다고 했다.
스미스 부인이라는 여인은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제 두 아이가 구명보트에 오르자, 만석이 돼서 제 자리는 없었습니다. 이때 한 여인이 일어나서 저를 구명보트로 끌어당기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올라오세요. 아이들은 엄마가 필요합니다!”
그날 수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으며 주요 승무원 50여 명도 전부 자리를 양보하고 생을 마감했다. 당시 생존자 대부분이 여자와 어린 아이였다. 만약 로봇이 승무원이었다면 이 돌발적인 사태에 어떤 선택을 했을까? 입력된 대로 일등석 사람들부터 보트에 태웠을 것이다. 죽음을 모르는 로봇은 규정에 반하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로봇은 인간이 만들지만 서로의 가치관이 충돌했을 때의 결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원시시대부터 엄청난 진화를 거듭해온 인간은 오늘날 유전자를 조작하고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새로운 장기를 만들어 불멸을 꿈꾼다. 그러나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가? 나의 두려움은 누구도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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