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현 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기획조정본부장)
진로교육이 진학교육에만 치우쳤던 과거에 비하면 근 10년간 일어난 진로교육의 변화는 놀라울 정도다. 내용은 다양해지고 기회는 많아졌다. 진로체험 관련 인프라도 크게 성장했다. 직업체험을 미래의 직업선택과 관련짓는 일은 이제 자연스럽다. 주류 진로교육이론도 개인 적성이나 특성을 특정 직업에 매칭시키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청소년들의 적성과 요구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직업체험처를 발굴해 매칭시키는 ‘좋은 매칭’에 역점을 두어 왔다.
청소년 각자에게 맞고, 또 희망하는 직업체험의 기회를 주는 것은 할 수만 있다면 좋다. 그러나 적성검사와 요구조사까지는 수월해도 적성과 요구에 맞는 직업체험처를 발굴해 매칭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각자의 적성과 요구에 맞는 충분한 직업체험처를 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고, 그것이 벅찬 지역도 있다. 충분한 직업체험처가 확보될 수 있는 지역이라 해도 적성과 요구에 맞는 직업체험처 매칭은 난제다.
불확실성의 시대, 진로교육은?
개인 특성과 직업 특성간 매칭을 전제로 한 직업체험은 애초부터 우리 사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특성과 요구에 맞는 직업체험을 해도 장래 꿈이 실현되는 것도 아니며, 적성과 요구에 맞지 않는 직업체험을 한다 해서 직업선택에 문제가 초래되지도 않는다. 직업선택에 있어 매칭은 원만하게 일어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지금은 과거보다 불확실성이 커졌고, 4차 산업혁명 영향으로 미래 불확실성은 더 커지게 될 것이다. 미래 직업세계, 노동시장의 변화는 이제 예측조차 힘들어졌다. 많은 직업이 없어지고, 또 새로운 직업이 탄생할 미래. 그리고 그런 예측조차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지금, ‘너는 이 다음에 뭐가 될래?’를 모토로 삼는 진로교육으로는 미래 변화에 대한 준비는 물론, 급박한 현실을 넘어서기도 힘에 부친다.
‘좋은 매칭’보다는 ‘진로탄력성’ 키워야
회복탄력성이란 말이 있다.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는 내적인 힘이랄까. 진로교육이 추구해야 하는 바도 다르지 않다. 진로탄력성이란 말로 바꿔 볼 수 있겠다. 지금의 역경, 미래의 역경과 혼란을 이겨낼 수 있는 ‘진로탄력성’을 키우는 것이 진로교육의 선택이 되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개인과 직업 간 매칭의 부담은 이제 얼마간 내려놓아도 좋을 성싶다. 직업체험은 진로탄력성을 키우는 좋은 수단이지만 직업체험이 아닌 보다 폭 넓은 체험이나 경험도 좋은 수단이다. 반드시 ‘좋은 매칭’이 아니어도 된다. 상담이나 진로상담, 자기주도 학습이나 경험도 좋은 수단이다.
세상도 라이프 스타일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일하는 방식도 빠르게 바뀔 것이며, N잡러(N jober)시대도 도래할 것이다. 노동시간은 줄고, 여가시간은 늘어날 것이다. 이런 시대의 진로교육은 자기 적성에 맞는 직업선택을 넘어 자신의 자존을 세우고, 자기 삶을 가장 빛나게 해줄 노동과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율적 의지와 정신, 즉 진로탄력성을 체득할 수 있도록 목표를 정해야 한다. ‘이 다음에 뭐가 될래?’가 아니라 ‘이 다음에 어떻게 살래?’가 진로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미 우리 사회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더 익숙해져 있다.
소외 계층 청소년에 관심 더 필요
그런데 진로탄력성도 문화자본과 같아서 소외 계층 청소년들에겐 이마저도 결핍될 수 있다. 문화자본의 간극을 메우려는 복지사업은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극복해야 할 장벽은 여전히 높다. 진로탄력성 향상을 목표로 하는 진로교육은 복지사업이 메우지 못한 간극을 좁힐 수 있다.
앞으로의 진로교육은 소외 계층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경우에도 개인-직업 간 매칭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에게 진로탄력성이 중요하듯 진로교육도 탄력성을 가져야 한다. 미스매칭과 격차라는 장벽을 넘기 위해 진로탄력성은 더 중요하다. 앞으로의 진로교육은 무기력감에서 벗어나 자존감을 세우고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없이 긍정의 힘으로 맞서는 ‘진로탄력성’ 키우기로 옮겨가야 한다.
[이 기고문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칼럼에 실린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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