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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5 격주간 제89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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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환의 고전산책] 수신(修身)과 평천하(平天下) |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져라”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구일신 일일신 우일신)
- 《대학(大學)》 중에서
어느 날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물었다. “군자(君子)는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군자는 경(敬)으로 자신을 갈고 닦는 사람이다(修己以敬).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경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경하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배려하고 공경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지면 주변 사람들이 편안해진다(修己以安人). 그것이 점점 퍼져나가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편안해질 것이다(修己以安百姓). 세상을 편안하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군자(君子)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화를 통해 유학(儒學)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대학(大學))》에서 말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가리켜 “궁극적인 목표는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대학(大學))》에서 말하는 수신(修身)과 제가(齊家),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는 인과관계나 선후관계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수신(修身)이 완성되면 제가(齊家)가 이루어지고, 제가(齊家)를 완성하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매우 단편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평천하(平天下)’가 아니라 ‘수신(修身)’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경하는 것(修身)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그들을 존중해주면 그들도 나를 존중해주고 그러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나와 주변 사람들이 모두 편안해진다. 편안하게 대해주니 찾아와 자신의 근심걱정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진심으로 함께 걱정하며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해답이 찾아진다. 문제를 해결하니 나를 존경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며 결국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군자(君子)는 천하를 다스리는 정치인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다. 다만 겸손한 자세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물론 현명한 선배들이 남긴 책을 읽으며 공부도 이어간다. 수신(修身)이 최종 목표다. 백성들이 편안해지고 천하가 다스려지는 것은 부작용(副作用)일 뿐이다.
내가 스스로를 갈고 닦았더니 집안이 안정되고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아, 이제 나라를 다스려야겠구나!’라고 생각하면 수신(修身)의 자세도 깨지고 집안도 무너진다. 수신제가(修身齊家)했더니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올랐다. ‘아, 이제 천하를 다스려야겠구나!’라고 마음먹는 순간, 수신(修身)의 자세도 깨지고 집안도 무너지며 나라도 혼란스러워진다. 방점은 어디에 있는가. 끊임없는 수신(修身)에 있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자로의 질문으로 돌아가도 해답이 나온다. 공자가 ‘수기이경(修己以敬) 수기이안인(修己以安人) 수기이안백성(修己以安百姓)’을 이야기하자 자로가 묻는다. “그거면 충분합니까?” 그러자 공자는 이런 말을 더한다. “요임금과 순임금도 이것을 이루지 못할까 걱정하며 평생을 보냈다(堯舜 其猶病諸).”
성인(聖人)이라 칭송받는 요임금과 순임금도 자신의 수신(修身)에 대해 ‘이제 다 이루었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탕왕(湯王)이 세숫대야에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진실로 날마다 새로워지고, 날마다 새로워지되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라고 새겨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신(修身)을 잊지 말자는 뜻이 아니겠는가.
천하를 다스리던 요순(堯舜)과 탕(湯)도 평생 스스로 부족하다 생각하며 수신(修身)에 매달렸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길이다.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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