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15 격주간 제656호>
<이야기 한자성어> 得望蜀(득롱망촉)

“농 땅을 얻자 촉나라를 바란다는 뜻으로, 끝없는 인간의 욕심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 유수(劉秀)가 처음으로 낙양에 입성하여 이를 도읍으로 삼았을 무렵, 즉 서기 26년경의 일이다.
당시 전한(前漢)의 도읍 장안을 점거한 붉은 눈썹의 도적인 유분자를 비롯하여 농서(감숙성)에 외효, 촉(사천성)에 공손술, 수양(하남성)에 유영, 노강(안휘성)에 이헌, 임치(산동성)에 장보 등이 땅을 나눠서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중 유분자, 유영, 이헌, 공손술 등은 저마다 황제를 일컫는 세력으로까지 발전했다.
그 후, 외효와 공손술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무제에 의해 토벌되었다. 외효는 광무제와 사이좋게 지내기로하고 서주 상장군(西州上將軍)이란 칭호까지 받았으나 광무제의 세력이 커지자 촉 땅의 공손술과 손잡고 대항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성(成)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황제라고 말하는 공손술은 외효의 사신을 냉대하여 그냥 돌려보냈다. 이에 실망한 외효는 생각을 바꾸어 광무제와의 관계를 강화하려 했으나 광무제가 신하될 것을 강요하므로 외효의 양다리 외교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건무(建武) 9년, 즉 서기 33년, 광무제와 대립 상태에 있던 외효가 병으로 죽자 이듬해 그의 외아들 외구순이 항복했다. 따라서 농서(감숙성) 역시 광무제의 손에 들어왔다.
이때 광무제는 이렇게 말했다.
“두 성이 함락되거든 곧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촉나라 오랑캐를 쳐라. 인간은 만족할 줄 모른다더니 이미 농(감숙성)을 얻고도 다시 촉을 바라는구나. 번번이 군사를 출동시킬 때마다 그로 인해 머리가 희어진다.”
그로부터 4년 후인 건무 13년, 서기 37년, 광무제는 대군을 이끌고 촉을 정벌하고 천하 평정의 숙원(宿願)을 이루었다.
광무제 때로부터 약 200년 후인 후한 헌제(獻帝:189 ~ 226)말, 즉 삼국 시대가 개막되기 직전의 일이다. 헌제 20년(220), 촉을 차지한 유비(劉備)가 강남의 손권(孫權)과 천하 대사를 논하고 있을 때 조조(曹操)는 단숨에 한중(漢中:섬서성 서남쪽 한강 북안의 땅)을 석권하고 농 땅을 수중에 넣었다. 이때 조조의 명장(名將) 사마의(司馬懿:자(字)는 중달(仲達), 진(晉)나라를 세운 사마염(司馬炎)의 할아버지)가 진언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진격하면 유비의 촉도 쉽게 얻으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자 조조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란 만족할 줄 모른다고 하지만, 이미 농을 얻었으니 촉까지 바라지 않소.”
이리하여 거기서 진격을 멈춘 조조는 헌제 23년(223), 한중으로 진격해 온 유비의 촉군(蜀軍)과 수개월에 걸친 공방전을 벌이다가 결국 ‘계륵(鷄肋)’이란 말을 남기고 철수하고 말았다.
〈얻을 득(得) / 땅이름 롱() / 바랄 망(望) / 나라이름 촉(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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