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준 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 기고문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발행 ‘농경나눔터’ 3월호에 실린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농업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식량을 생산하여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농업의 식량 공급이라는 공익적 역할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그 중요성도 낮아지지 않을 것이다.
과거 식량이 부족했던 시기에는 값싼 농산물을 충분하게 공급하는 것 자체가 농업의 공익적 역할이었다. 식량의 양적 확충을 위하여 정부는 생산기반 정비를 지원하고, 핵심 품목인 쌀 가격 관리를 통해 농업소득을 지지하였다.
농업의 공익적 역할 ‘양’에서 ‘질’로
소득성장, 기술발전, 시장개방 등 대내외 여건이 변화하면서 식량 공급이라는 농업의 공익적 역할도 ‘양적 측면’에서 ‘질적 측면’으로 변화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양적 성장 과정에서 시행해 온 집약적 영농방식에 대하여 안전성 측면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축산업의 밀집사육에 따른 가축질병, 가축분뇨와 악취 등 사회적 비용 유발 및 환경부하 문제에 대하여 소비자들은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서는 소비자의 농산물에 대한 품질 및 안전성 요구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하며, 환경보전, 경관유지, 수질 및 토양 관리 등을 위한 농업부문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 농업의 공익적 역할은 관행농법으로 인한 환경부하 문제 등 부정적 영향을 축소시키고, 미래 환경·자원보전 차원에서 긍정적 역할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공익형 직불제 방식으로 전환해야
농업의 공익적 역할 변화를 견인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정책 수단은 직불제이다. 현행 직불제는 식량공급이 농업의 공익적 역할이던 시기에 수매제 폐지와 쌀 시장개방 가능성에 따른 농가의 소득보전을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앞으로의 직불제는 농산물의 양적 공급방식으로부터 안전성 및 품질 제고를 위한 영농방식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득 손실을 보전하고, 농업 영위 과정에서 수행하는 환경 및 자원관리 등 외부효과(시장실패)에 대한 소득보전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농정의 핵심 수단으로써 20여 년간 시행해 온 현행 직불제를 개편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운 정책 여건 변화에 맞추어 지원체계를 재설정하고, 지원조건과 방식을 개편하며, 정책 전환으로 예상되는 문제들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농업의 공익적 역할 변화에 대응한 공익형 직불제로의 전환으로 예상되는 과제들을 점검하고, 정책 전환으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정책방향은 생산성에서 안정성·품질로
공익형 직불제로의 확대 개편을 위해 필요한 과제를 정리하면, 첫째, 농업정책의 방향이 생산성 제고에서 농산물의 안전성과 품질 제고를 위한 지원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둘째, 농산물 안전성 문제, 가축질병 및 가축분뇨 등 소비자의 입장에서 농업의 공익적 역할을 재인식해야 한다. 셋째, 농업의 공익적 역할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실천 가능한 교차준수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넷째, 농업의 공익적 역할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명확한 업무 구분 및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농업정책과 농촌정책 간 연계를 통해 농업·농촌의 공익적 역할을 견인할 수 있는 정책조합(policy mix)을 만들어야 한다.
쌀 공급과잉은 근원적 해법 접근 필요
현행 직불제를 공익형 직불제로 원활하게 전환하기 위해서는 특히, 변동직불제 폐지에 따른 쌀 공급과잉 문제, 쌀 가격하락으로 인한 소득 불안정 가능성 그리고 쌀에 대한 지원 축소 가능성 등의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먼저, 쌀 공급과잉 문제는 쌀 생산만을 줄이는 소극적 방식으로부터 ‘쌀에서 곡물로’ 정책을 전환하는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쌀 농가의 가격하락 우려에 대응하여 수급조절 방식의 체계화, 시장가격에 근거한 급격한 가격하락 대응 수단 마련, 경영위험에 대한 정부와 농가의 공동 관리 방식의 확충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쌀 농가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직불제 예산 확보와 합리적 운용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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