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01 격주간 제896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봄을 만드는 힘

“얼음이 풀리는 것처럼 아무런 의혹도 없이”
渙然氷釋(환연빙석)
- 「근사록(近思錄)」 중에서

유학(儒學)에서는 봄을 단순히 계절이라는 의미로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우주만물의 바른 이치는 원형리정(元亨利貞)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오면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된다. ‘원(元)’은 봄이다. 따스하고 온화하여 새싹이 돋아난다. 사람에게는 어질고 착한 마음, ‘인(仁)’에 해당된다. ‘형(亨)’은 여름이다. 모든 것이 무성하게 자라난다. 사람에게는 ‘예(禮)’에 해당한다. 올바른 방법에 따라 어질고 착한 마음을 더욱 크게 키워나가는 것이다. ‘이(利)’는 가을이다. 풍성한 결실을 맺는다. 사람에게는 ‘의(義)’에 해당한다. 어질고 착한 마음을 크게 키워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정(貞)’은 겨울이다. 모든 것을 이루어내고 조용히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이다. 사람에게는 ‘지(智)’에 해당한다. 반성하는 과정 속에서 지혜가 쌓인다. 그런데 ‘원(元)’에는 원형리정(元亨利貞)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봄에는 4계절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인(仁)’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율곡 이이의 말이다. 봄은 단순히 계절의 의미를 넘어, 하늘의 이치, 생명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힘을 의미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인(仁)’이 나에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나를 가다듬어 ‘인(仁)’을 구현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봄도 나에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나를 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강물과 바닷물이 일렁이며 오랜 시간에 걸쳐 땅의 모양을 바꾸는 것처럼, 비가 흠뻑 내려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는 것처럼, 겨우내 꽁꽁 언 얼음이 봄날을 맞아 얼음의 작은 조각초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게 풀리는 것처럼(渙然氷釋), 공부란 억지로 어느 경지에 오르려고 안달을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에게 녹아드는 것이다.”
중국 진(晉)나라의 학자인 두예(杜預)의 말이다. 봄을 이루기 위해 억지로 얼음을 깨거나 녹이는 게 아니다. 따스한 봄이 되면 얼음은 저절로 풀린다. 겨우내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노력을 하더라도 꿈쩍도 하지 않던 얼음 덩어리였지만 봄이 되면 자취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져버린다.
무엇인가를 이뤄내는 것,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 어떠한 경지에 오르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뜻한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벼드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바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부작용(副作用)처럼 다가오는 게 바로 성취다.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바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그 노력이 쌓이면 봄이 된다.
“성인(聖人)의 경지는 바른 생각과 행동이 생활의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익숙해져야만 도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사람들은 무턱대고 높은 곳만을 바라보며 이루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루지 못한다. 이는 마치 마음만 동동 구름 위에 떠 있고 몸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것과 같다. 멀고 높은 곳을 향하여 뛰어올라 단번에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하루하루 공부하며 쌓인 것이 모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룩되는 것이다. 안을 꽉 채우면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밖에서 응답이 생기는 것이다.”
송나라의 학자, 정호의 말이다. 자신을 가다듬으며 때를 기다리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넋을 놓고 멍하니 있으라는 뜻은 아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다듬으라는 뜻이다. 봄이 오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도록 체력을 기르라는 의미다. 체력을 기르지 않은 사람은 봄이 와도 멍하니 넋을 놓고 있을 뿐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봄이 와도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봄은 나에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다.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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