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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5 격주간 제89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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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착한나들이] 내 인생 가장 자랑스러운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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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재가 되어 이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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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좀 별난 친구가 있다. 젊은 나이에도 백발을 하고 다니는가 하면 내가 늙는 걸 두려워할 때 노인이 되길 바라고 내가 청바지를 입을 때 그녀는 한복을 입고 다녔다. 친구들보다 십 년은 늙어 보이는데도 당차게 자신만만한 그녀.
그래서 우리는 그녀에게 말한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고. 돈 잘 버는 남편에다 아들은 S대 대학원 연구생이며 딸은 올해 회계사가 되었으니 그 비결이 뭐냐고?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한 거야.” 그녀는 자신의 꿈을 오래전부터 가족에게 선포했다고 한다. “엄마는 산골로 들어가 집을 짓고 혼자 살 것이며 꼭 시인이 될 거야.” 그녀는 아들이 대학생이 되어 하숙집을 구해도 가본 적이 없으며 아이들에게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한 적도 있단다. 20살이 넘었으니 자립하라는 의미로.
그녀는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자 땅을 보러 다녔다. 보통 가정주부로는 어림없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줄기차게 귀농사이트를 뒤지고 발품을 팔더니 어느샌가 단양에 집을 짓고 일주일에 절반은 그곳에 가서 살기 시작했다.
단양의 깊은 산속에 있는 그녀의 집. 처음엔 말도 많았다고 한다. 암에 걸려 왔다는 둥 이혼녀라는 둥. 그러나 그녀는 남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바보짓이라고.
그리고 8년이 지난 엊그제, 연말을 맞아 그녀가 우리를 초대했다. 기차표를 끊고 전화를 했더니 그녀는 자연스레 말했다. “야, 먹을 거 가지고 와. 집에 먹을 게 없어. 그리고 주방 세제가 떨어졌으니 그것도 하나 사와.”
저녁에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내가 물었다. “넌 친구가 오는데 먹을 걸 사 오라고 하냐?” 그녀의 대답은 명쾌했다. “난 나를 위해 살아. 누가 온다고 해서 나만 힘들게 시장을 보고 밥상 차리긴 싫어. 서로가 부담이 되는 일은 재미없거든.”
난 황당했다. 이제껏 내 삶의 신조는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내 인생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아이들을 키운 거였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자신이 지은 집과 시인이 된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도 자기처럼 살아가길 바란다고.
밤이 깊어 가자 그녀의 딸이 전화를 했다. 깨소금 안부였다. 조금 있다 아들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묘한 현상이었다. 나는 내가 먼저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고 조바심을 치는데 이건 정반대였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나보다 자신의 행복이 우선인 그녀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아침을 먹은 후 우리는 뒷산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죽은 나뭇가지를 자루 속에 넣어 꽁꽁 묶더니 산에서 데굴데굴 굴리며 내려왔다. 지고 가야 할 짐을 발로 차서 굴리는 그녀! 사람에 따라 짐의 무게는 농담처럼 가벼워진다.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나무는 이내 재가 되어 사라진다. 우리도 언젠가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짐까지 짊어지고 힘들게 살 건 무언가?
새해다. 설이면 동생들이 찾아온다. 나는 상상을 하며 헤벌쭉 웃었다. “야, 집에 먹을 게 없다. 뭐 한 가지씩 해가지고 와!”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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