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재 광 회원 (전남4-H연합회 대외지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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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광 회원은 같은 농업에 종사하며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4-H활동이 큰 힘이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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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의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들판과 언덕 그리고 아직은 부끄러운지 붉은 옷을 간직한 산길을 달려 도착한 전라남도 함평군. 나비의 고장 이곳 함평에서 힘찬 날갯짓으로 농업계의 태풍을 불러일으킬 박재광 회원(27·전남 함평군 손불면 차경길)을 만났다.
조사료작업으로 한참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박재광 회원. 훤칠한 키에 호감 가득한 미소를 가진 그는 스스로 영농후계자 5년 차인 초보 농사꾼이라 칭한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기업의 CEO, 그것이 제 꿈이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고 대학에서 경영을 배우면 CEO가 되는 줄만 알았죠. 하지만 고등학생이 돼서 바라 본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저의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함평군에서 태어나 바쁘신 부모님 대신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성장한 박재광 회원은 그 해답을 눈뜨면 보았던 논밭 그리고 산에서 찾았다.
“고민 끝에 눈을 돌리니 경영의 개념이 달라졌습니다. 소를 키우시고 논과 밭농사로 소를 늘려가는 저희 할아버지가 제가 존경하는 CEO이셨어요. 할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사셨고 몸은 편찮으셨지만 열정은 젊은이들보다 강하신 농업CEO. 제가 고민을 끝내고 농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할아버지를 본받아 농업CEO를 결심한 박재광 회원은 2011년 한국농수산대학교 식량작물학과에 입학해 2014년 전문학사(2018년 전공심화과정 수료 후 학사 취득)를 취득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현재 한우 20두, 논밭 3,960㎡에서 수도작과 양파 등을 재배하고 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서툴렀고 학교에서 배웠던 것과 현실은 많이 달랐습니다. 정성껏 키운 농작물은 헐값에 팔려갔고 저의 불찰로 송아지도 세상을 떠나보내야만 했죠. 좌절은 커져 갔지만 모든 게 경험이라며 할아버지께서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경험 많은 할아버지와 마을 어르신들의 충고만으론 부족했다. 농사는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그때 그는 4-H선배들을 만났다.
“힘든 시간에 만나 형들은 같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 같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며 함께 성장하는 모습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어요. 때문에 저에게 4-H는 나의 동료, 선·후배가 있는 화합의 장이 되었죠.”
의지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4-H. 전쟁터 같았던 바깥세상과는 달리 지·덕·노·체 4-H이념으로 다른 세상을 알려준 4-H는 그에게 또 다른 가족이자 멘토가 되었다.
“제가 받았던 모든 것을 4-H와 후배에게 돌려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함평군4-H연합회 임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작년부터는 전남4-H연합회 대외지원부장, 올해는 한국4-H중앙연합회 기획부장까지 맡고 있습니다.”
취재에 동행한 이용정 전남4-H본부 사무처장은 농업이면 농업, 4-H활동이면 활동 모든 것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박재광 회원은 4-H와 농업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농업과 4-H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인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용정 사무처장의 칭찬에 겸손을 보이며 앞으로는 자신의 고장 함평군에도 베풀고 싶다고 수줍게 말문을 연 박재광 회원. 아직 자신은 영농후계자 5년 차인 함평군 손불면 차경마을의 초보 농사꾼이지만, 하늘에서 보고 계신 할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손자가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배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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