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5 격주간 제887호>
[지도자 탐방] 뼛속 깊이 새긴 4-H정신으로 전국 최고 축제 만들어내
김 봉 선 (강원 양구군4-H본부 회장)

전국 최고의 곰취축제를 만들어낸 김봉선 회장은 4-H후배들이 4-H정신으로 살아간다면 농촌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강원도 양구군4-H본부 김봉선 회장(63·강원도 양구군 동면 바랑길 106-17)은 지난 13일 ‘양록의 얼 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양구군의 향토문화축제인 양록제에서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한 유공자에게 주는 뜻깊은 상이다. 국토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는 양구. 그러면서도 38선을 경계로 하고 제4땅굴이 있는 양구. 민족의 한과 아픔이 그대로 담겨있는 곳이다. 김 회장은 이 지역에서 지난 50여 년간 땅을 일구며 양구의 농업과 농촌을 지키고 발전시켜 왔다. 김 회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상을 받아왔지만,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 담긴 ‘양록의 얼 상’을 받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 그 시작에는 4-H가 있었다.
원래 인제군 상남면 출신인 김 회장은 1975년도에 양구로 왔다. 이 낯선 땅에서 김 회장을 선뜻 받아준 곳이 4-H였다. 용이 승천하다 떨어졌다는 전설이 있는 용하리 마을의 ‘동산4-H회’였다. 한창 젊음이 끓던 그 때, 김 회장은 열심히 활동했다. 마을4-H회장을 거쳐 면 회장, 군 회장을 맡으면서 4-H정신을 뼛속까지 심으며 영농활동을 했고 또 리더십을 길렀다.
4-H활동이 한창 왕성했던 그 당시 열심히 과제장을 쓰면서 앞선 영농기술을 익혔다. 도4-H경진대회와 4-H중앙경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합숙하며 준비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이 김 회장을 농업·농촌에 뿌리내리게 했고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살게 했다. 잠시 도시 생활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몇 번 공직에 나갈 기회도 있었지만 결국 자신의 천직은 바로 이곳 농촌에서 농사짓는 일이라 여기고 땅을 일궜다.
4-H활동을 마친 김 회장은 영농후계자로 선정되었고 최연소 군정자문위원으로 지역의 일에 뛰어들게 되었다. 농협 이사와 마을 이장을 하면서 팔랑리를 일약 전국에서 으뜸가는 곰취마을로 만들어냈다.
그는 이곳에서 1만2,000㎡의 시설하우스와 5,000㎡의 밭에서 곰취와 수박, 고추, 배추 등을 재배하며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또 경관이 빼어난 팔랑계곡에서 풀하우스라는 팬션도 운영하고 있다.
김 회장이 28세 때, 마을 청년회 11명의 회원들과 함께 어떻게 차별화된 마을을 만들까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대암산에 자생하는 곰취였다. 이 곰취를 채취해 밭에서 길렀다. 하지만 이 야생작물은 사람의 손을 거부하게 된다. 그늘도 없는 밭에 거름만 주고 물만 준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의욕만 가지고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때 둔내에서 곰취를 재배하고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된다. 직접 곰취재배 현장을 찾아 종묘를 얻어다 기른 것이 양구곰취의 시작이었다. 품질 좋은 양구곰취는 인기가 좋았고 팔랑마을의 곰취 재배 면적은 점점 늘어났다. 김 회장은 산채교육도 받고 곰취에 대한 많은 이론과 실전을 길렀다. 그러면서 이 작물이 곰취의 일종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곤달비’였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한다.
김 회장은 2002년도에 팔랑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은 인천 간석2동 주민들을 초청해 곰취잔치를 열었다. 반응이 무척 좋았다. 그래서 2003년에는 기관장들을 초청하고 더 많은 홍보를 해서 제1회 곰취축제를 열게 되었다. 곰취떡, 곰취빵 등 상품도 개발해냈다. 이 축제는 입소문을 타고 매년 더 많은 관광객이 몰려와 매년 5~10만 명이 찾는 축제로 발전하게 된다. 양구주민 모두 합쳐봐야 2만4,000명밖에 안되는데, 전체 주민의 몇 배가 되는 사람들이 매년 이 축제를 찾게 된 것이다. 더 이상 팔랑리 김 회장의 집 주변은 주차문제 등으로 감당하기 힘들 만큼 규모가 커졌다. 그래서 3년 전부터는 축제장을 양구읍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김 회장은 오는 16일에는 동해에서 열리는 환경보호 세미나에서 환경부장관 표창을 받는다. 오랫동안 우리 강산을 가꾸고 지키는데 힘써온 덕분이다. 4-H활동을 하면서 도지사상, 청장장, 장관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새농촌건설운동 최우수상으로 마을에 5억원의 상금을 안겨주기도 했고, 농업인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결실은 땅을 일구듯 그저 성실하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김 회장은 후배4-H회원들에게 자신이 4-H정신으로 그동안 살아온 삶을 들려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 농촌에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와야 된다고 강조하는 그는 “청년농업인4-H회원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성실히 노력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던 자신이 4-H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시작된 새로운 삶을 후배들이 따라와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조두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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