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함부로 다루어 언어에 깃든 민족문화를 훼손하는 잘못을 경계하고, 나의 ‘말 한 마디’가 나의 인품은 물론 우리나라를 밖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 기 지 (한글학회 학술부장)
우리 속담 가운데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말 한 마디’의 중요성을 얼마나 자각하고 있을까?
말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앞선 의사소통 수단이고, 인류가 생산하고 축적해 온 모든 문화는 이 말에 담겨 있다. 자연히 문화가 다른 민족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게 마련이고, 그 민족의 말에는 그 민족의 고유한 정신이 들어 있다. 그래서 남과 북으로 갈라진 지 70년이 넘은 우리 민족은 언어 이질화와 그에 따른 민족정신 분열을 막기 위해 2005년 2월 금강산에서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후 2006년에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 편찬사업회가 출범하였고, 2007년에 특별법이 제정되어 지금까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이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정권 동안 한반도가 여러 차례 전쟁 위기를 겪으면서도 이 사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말 한 마디’가 일상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각해야만 한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한자말을 고급 언어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쉬운 우리말을 저급 언어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공식 석상에서는 ‘앉아주십시오’보다 ‘착석해주십시오’가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명절 차례를 올리거나 제사를 지낼 때에도 조상에 대한 제문이나 비문은 한자-한문으로 적어야 예의라고 생각한다. 한글이 일반에 보급되지 않았던 시대에 그리 적었던 것일 뿐인데도 한문이 조상에게 예의를 갖추는 고급 언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에는 민족정신도 우리말에 대한 긍지도 들어있지 않다.
그런가 하면, 우리 시대의 영어 숭배 풍조는 한층 심각하다. 영어는 이미 우리 말글생활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한국 사회의 고급 언어 행세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구성원 가운데 9할은 영어와 별 상관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스무 해 이상 영어를 배웠지만 정작 사회에 나서면 자기가 하는 일에 영어 능력이 필요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영어를 요구한다. 쓰임새가 있느냐 없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영어는 세계화 시대의 필수 언어라고 강조할 뿐이다. 그리고 그 뒤에서는 우리말이 속절없이 무너져 가고 있다.
그뿐인가? 생활환경 변화와 문화 발전에 따른 신조어 곧 ‘새말’의 무분별한 생산과 유통은 외래어의 팽창과 아울러 우리말의 존폐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예전에는 새말이 만들어지거나 파생어나 합성어가 생산될 때에, 일정한 규칙(조어법)이 있었다. 이렇게 규칙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옛말이라 할지라도 오늘날에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거나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최근의 새말들은 조어법도 무시하고 규칙적으로 생산되는 것도 아니다. 그 때문에 같은 시대에 살면서는 그 뜻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지만, 후세에 그대로 전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요즘 새말은 예부터 만들어져 전해 오는 새말에 비해 생명이 짧다고 할 수 있고, 이는 우리말의 보존과 발전을 가로막는 매우 큰 암초로 지적된다.
우리 시대의 새말, 주로 SNS를 통해 소통되는 인터넷언어는 규범적인 현실 공간에서의 말글살이에서 벗어나, 자유로움과 새로움을 경험하려는 청소년들의 욕구에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므로, 의사소통 기능이 보편적이지 못하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가장 눈에 띄는 문제점은 비속어와 은어, 외래어, 각종 기호문자들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해서 국민들의 실제 언어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새말을 생산하고 퍼뜨릴 때에 우리말의 근본 체계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스스로 유의해야 할 것이다.
언어는 그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결정체이다. 지금은 우리 역사 이래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와 저력이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때이다. 지구촌의 많은 나라들이 한류에 열광하고 있고 그 한류의 중심에 우리말과 한글이 있다. 이러한 때에 남의 언어를 숭배하고 자기 언어를 낮잡아보는 태도는 슬픈 코미디이다. 우리말을 함부로 다루어 언어에 깃든 민족문화를 훼손하는 잘못을 경계하고, 나의 ‘말 한 마디’가 나의 인품은 물론 우리나라를 밖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 한 마디’의 중요성을 깨달을 때에 우리말의 미래, 우리 민족문화의 발전이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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