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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5 격주간 제88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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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착한나들이] 고향은 변하지 않는다 |
- 강원도평창진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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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앉았던 자리에 봄꽃처럼 피어있던 아이들. |
몽골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다. 몽골이 사회주의 국가일 때 전쟁 중이던 베트남에 말을 보낸 적이 있다고 한다. 트럭과 기차를 바꿔 타며 한 달 만에 베트남에 도착한 말들 중 한 마리가 도망갔는데 그 말이 1년 만에 몽골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베트남으로 보낼 때 뒷다리에 찍어 둔 낙인이 선명한 그 말을 정부는 평생 돌봐주었다고 한다. “말이 어떻게 그 먼 길을 찾아왔을까?” “고향이 그리워서지.” 친구의 대답이었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나라가 있어도 내 고향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 고향은 강원도 진부다. 내가 떠나온 건 초등학교 졸업 후, 그러니 수 십 년이 흘렀다. 몇 번인가 스쳐 온 적은 있었지만 작정하고 배낭을 메고 찾아가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고향! 그곳에 내려 한참을 고아처럼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내가 알던 길은 낯선 풍경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표지판을 더듬어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로 갔다. 나무로 지었던 학교는 사라지고 4층 건물이 그 자리에 있었다. 학교는 변해도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목소리는 바람 부는 날 미루나무 잎처럼 반짝였다. 나는 운동장가에 올망졸망 앉아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아득한 옛날 내가 앉았던 자리에 또 다른 아이들이 봄꽃처럼 피어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나도 이 학교에 다녔는데 학교가 그리워 찾아 왔다고. 아이들은 ‘몽돌’이란 시를 알고 있었다. 그건 5학년 교과서에 실린 내가 쓴 동시다. 우리는 이내 친해져서 사진을 찍고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그리고 서울 오면 전화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고향만이 줄 수 있는 깜짝 선물이었다.
해질녘 내가 살았던 동네를 찾아갔다. 물론 내가 살던 집은 사라진 지 오래, 새 주택들이 들어서 있었다. 나는 기억을 따라 몇 번이고 그 길을 오고갔다. 그러다 한 순간 전율이 왔다. 낯선 집 위로 예전의 우리 집이 훤히 겹쳐 보였다. 그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엄마의 목소리였다.
초등학교 때 나는 밴드부였다. 그날은 처음으로 유니폼을 입고 악기를 연주하며 동네를 행진하는 날이었다. 모두 하얀 운동화를 신었는데 혼자만 까만 운동화를 신은 나는 남몰래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때 엄마가 나를 부르며 숨차게 달려왔다. 엄마 손에서 빛나던 하얀 운동화! 신발이 동이 나자 엄마는 대관령 너머 강릉까지 가서 운동화를 사온 것이다.
엄마가 떠난 후 꿈에서도 그리운 건 내 이름을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였다. 나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그날처럼 눈물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엄마 고마워요!”
그리움이란 기억이다. 베트남에서 말이 몽골까지 달려온 것도 내가 배낭을 메고 고향을 서성거리는 것도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 기억으로 인해 고향은 변하지 않는다. 하늘의 구름도 학교 뒷산도 목청껏 울어대는 닭소리도 길에 핀 백일홍도 예전과 같다. 고향엔 엄마 목소리가 있고 하얀 운동화를 신고 작은 북을 치며 걸어가는 꼬맹이가 있다.
고향에 가면 잃어버렸던 내가 보인다. 그래서 아주 오래된 질문을 하게 된다. 꼬맹아,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니?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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