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01 격주간 제655호>
< Cinema & Video > 원작에 충실했지만 낡은 이야기

황 진 이

2003년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통해 북한의 홍석중 작가의 소설 ‘황진이’의 영화화가 시도됐다. 그 후 무려 4년이 지난 후에 제작비 100억 원대의 대형 프로젝트가 완성되어 상영되고 있다. 북한을 대표하는 작가인 홍석중의 손에서 탄생한 원작 ‘황진이’는, 지난 2002년 북한작품 최초로 국내 만해문학상을 수상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리고 북한 저작물로는 국내에서 합법적, 공식적 절차를 거쳐 영화화된 첫 번째 작품이다.
어렸을 때부터 황진이(송혜교)를 흠모해온 노비 놈이(유지태)는 황진이의 출생의 비밀을 발설하여 황진이의 혼담을 깨지게 만든다. 이로 인해 황진이는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찬 양반 사대부에 대한 복수심으로 송도의 색주가인 청교방 기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후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던 놈이는 화적으로 떠돌며 불쌍한 빈민들을 돕고, 황진이는 뛰어난 미색과 기예로 양반들을 현혹하여 사대부의 허위와 위선을 희롱한다. 사또 희열(류승룡)은 황진이에게 빠져서 스스로 양반이면서도 양반을 놀리는 재미에 빠져 산다.
하지만 놈이가 이끄는 화적떼가 계속 양반 가문의 재물과 곡식을 탈취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이 발생한다. 희열은 진이의 마음 속 연인 놈이를 질투하며 그를 잡기 위한 꾀를 부린다. 바로 결혼식을 치루는 놈이의 부하 괴똥(오태경)을 잡아서 놈이를 유인하려 한 것이다. 황진이는 자신의 능력으로 처리하려 하나 그 사실을 모른 놈이는 관가로 가서 자수를 하고 사형을 당하게 된다. 죽은 놈이의 유골을 들고 눈 덮인 금강산을 오르는 황진이의 모습에서 영화는 끝난다.
북한에서 쓰인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 한다면 쉽게 ‘황진이’속에 들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읽을 수 있다. 자본가 계급을 상징하는 양반과 관료들, 그리고 노동자 계급을 상징하는 평민들, 그리고 혁명을 이끌어가는 놈이와 황진이.
소설이라는 문학의 상징성이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상 짧은 시간의 이야기 구조에 맞춰 더 압축했어야 했지만 ‘황진이’는 그러지 못 했다. 상징은 있으되 이야기는 너무 낡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황진이’와 ‘놈이’의 사랑이 아름답거나 혹은 슬프게 표현된 것도 아니고, “세상을 자신의 발아래 놓겠다”고 외친 ‘황진이’의 세상에 대한 복수가 통쾌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영화는 상징성들을 표현하는 것에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관객의 감정적 동요를 일이키는 데는 실패했다. 상징이 내포한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손광수 /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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