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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1 격주간 제88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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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탐방] “젊은 시절 만난 4-H가 내 인생의 지표를 바꿨다” |
김 연 섭 (강원 정선군4-H본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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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섭 정선군4-H본부 회장은 날로 변하는 시대에 4-H회원들이 더욱 공부하고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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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하는 사람은 일꾼입니다. 하지만 연구하는 사람은 경영자가 될 수 있습니다.”
4-H후배들에게 공부하고 노력할 것을 당부하는 김연섭 정선군4-H본부 회장(59·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천포안길 6)은 농업인도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상은 날로 발전하는데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목표를 설정하여 끝까지 가되 영농 작목도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정도만 가지고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정선군4-H본부 회장을 맡아 4-H후배들을 후원·육성하고, 한국농촌지도자정선군연합회장으로서 농업인의 권익신장을 위해 힘쓰고 있다. 그는 농촌지도자로 활동하면서 상대는 농업인이 아니라 농업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공직자들은 국가가 제공하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그들을 설득하고 농업인의 입장을 대변하려면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영월 출신인 그는 40여 년 전 가세가 기울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맨손으로 정선에 왔다. 1983년에 천포마을4-H회장을 맡으면서 지금까지 평생 4-H정신으로 살아왔다. 1986년 정선군4-H연합회장을 역임하고 다음해에는 강원도4-H연합회 총무로 일했다. 이후 한국농업경영인 활동에 참여해 1998년 정선군연합회장, 2004년 강원도정책부회장으로 강원도 농업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그는 현재 5만3,000여㎡에 1,600여 그루의 자두와 3만㎡의 밭에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연 1억여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연차적으로 증가해 계획대로라면 5년 후에 3억원의 순수익이 예상된다. 가뭄을 어떻게 이겨냈냐는 기자의 질문에 물을 길어대느라 “일 좀 했다”고 대답한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8,300㎡의 자동하우스에서 오이, 토마토, 피망 등 시설농업을 했다. 하지만 IMF 이후 해발 350m지역인 정선에서는 시설농업이 경쟁력이 없어서 과수로 전환했다.
“젊은 시절에 만난 4-H가 내 인생의 지표를 바꿨습니다. 4-H이념이 너무 순결해 종교처럼 믿으며 4-H신앙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젊은 시절 만난 4-H정신으로 이 땅을 가꿔온 그이기에 4-H와 농업·농촌에 애정이 많은 만큼 할 말도 많다. 그는 “4-H에서 너무 깨끗한 것만 배워 고지식하고 세상살이에 손해를 많이 보기도 했다”고 웃음 지었다.
그가 마을단위 4-H회장 시절에 단체과제로 묵은 밭을 일궈 콩을 심어서 300여만 원의 기금을 조성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금액이었다. 이 과제로 정선군4-H경진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도경진대회에는 정선군에서 2등을 했던 4-H회가 참가해 1등을 거머쥐었다.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지 않은 그의 대쪽 같은 성격 탓이었다. 당시 4-H회원 연령이 만29세까지로 늘어난 마당에 그는 4-H행사의 자율성을 주장했다. 군연합회장에 당선된 뒤에는 1일찻집을 운영해 200여만 원의 기금을 조성해 후배들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우리 농업의 미래에 대해 그는 “한국농업 미래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것은 정책 담당자들이 농업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농업인에 의한 농업정책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농업을 경시하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우리 농업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청년농업인 육성에 대해서도 그는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발목을 잡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의 희생을 강요하지 말고 그들이 제대로 영농에 정착해 살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귀농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지금 현지 농업인에 대한 지원 정책도 못하면서 어떻게 귀농인을 위한 좋은 정책을 펼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농업에 정착하려면 최소 10년의 경험은 쌓아야 되고 훌륭한 멘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연섭 회장은 벌써 올해 농사는 거의 마무리하고 내년 농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운동도 하고 책도 보고 여행도 다녀올 계획이다. 사실 시설하우스를 할 때는 사철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보니 생각하는 농업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때 터득한 것이 농업인도 삶의 여유를 갖고 실력을 갖춰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김연섭 회장을 비롯한 4-H인들의 4-H와 농업·농촌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절망 속에 놓여있는 것만 같은 대한민국의 농업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줄 것을 기대해 본다. 70년 전 그 암울한 시절에 4-H희망의 씨앗이 척박한 농촌을 푸르게 가꿨던 것처럼. 〈조두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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