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5 격주간 제881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당쟁(黨爭)은 나쁜 것일까?

"붕당(朋黨)은 투쟁에서 나오고, 투쟁은 이해(利害)에서 나온다
朋黨生於爭鬪 爭鬪生於利害(붕당생어쟁투 쟁투생어이해)"
- 《성호전집(星湖全集)》 중에서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은 영조(英祖) 시대에 활동한 대학자였지만 중앙 정치무대에 나선 적은 없었다. 아버지와 형님이 모두 당쟁에 의해 목숨을 잃었기에 그는 과거시험을 보지 않고 재야에서 활동하며 학문을 닦았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의 극심한 혼란을 가까스로 수습하며 제2의 전성기를 시작하려는 길목에 놓여 있었다. 숙종과 영조는 추락한 조선을 그나마 격식을 제대로 갖춘 나라로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다. ‘당쟁(黨爭)’이 문제였다. 영조가 ‘당쟁’의 폐해를 극복하려고 탕평책(蕩平策)을 썼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탕평(蕩平)’이란 《상서(尙書)》에 나오는 ‘無偏無黨王道蕩蕩 無黨無偏王道平平(무편무당왕도탕탕 무당무편왕도평평)’에서 유래된 말이다. 편향되지 않고 무리 짓는 것(黨)이 없으면 나라가 평안해진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단체를 결성하는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말이다. 영조는 각 당의 사람들을 골고루 등용하는 것으로 이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를 이익은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했다.
“붕당(朋黨)은 투쟁에서 나오고, 투쟁은 이해(利害)에서 나온다(朋黨生於爭鬪 爭鬪生於利害). 예를 들어보자. 지금 열 명이 똑같이 배가 고프다. 밥은 한 그릇인데 모두 숟가락을 들이대니 싸움이 일어난다. ‘왜 싸우는가?’라고 물으니 ‘말이 공손치 않은 자가 있었다.’라고 이유를 댄다. 사람들은 말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다고 믿는다. 다음날 또 밥 한 그릇을 열 명이 함께 먹는데, 또 싸움이 일어난다. 이번에는 ‘태도가 불량한 자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태도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다고 믿는다. 다음날 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공손하지 않은 것도, 태도 불량도 아니다. 그저 밥그릇 싸움일 뿐이다. 싸움이 이어질수록 당의 결속력은 강해지고 결속력이 강해질수록 싸움은 격렬해진다.”
한 사람 분량의 밥을 열 사람에게 나누어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중국 송나라의 학자 주희(朱熹)가 승상(丞相)의 자리에 있던 유정(留正)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보자.
“승상께서는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패가 나뉘고 서로 어울리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이루는 것에 대해 염려하셨습니다. 그러나 무리를 짓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이유로 무리를 짓느냐에 주목해야 합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리를 짓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중략)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조화롭게 등용하면 당쟁이 일어나지 않고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바르고 현명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섞여 있었기에 나라가 안정을 찾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바르고 현명한 사람으로만 채운다면 더욱 큰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이 섞여 있다.’는 것을 모범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것을 모르고 그저 여러 사람들을 두루 기용하는 것만이 옳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것은 매우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리를 짓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다만 무엇을 위해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무리를 짓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익과 주희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 스스로 해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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