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5 격주간 제877호>
[이달의 착한나들이] - 인천강화 -
강화 교동시장에서 만난 시

역사 이래 인간이 겪었던 가장 혹독한 이별과 희망을 담은 가훈이 아닐까.

고향이란 무엇인가?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나는 몽골 고비사막을 좋아한다. 가도 가도 광활한 초원이 펼쳐지는 고비사막. 지평선 위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곳. 때로는 몇 시간을 달려도 게르를 볼 수 없는 곳. 그곳에서 차가 고장 난 적이 있었다. 초원엔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몽롱한 향기를 내뿜고 새들이 풀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망연히 길가에 앉아 누군가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꿈결처럼 뻐꾸기가 울었다. 그 소리는 영혼의 손짓처럼 마음을 흔들었다. 그 때 몽골 가이드가 들려준 이야기다.
유목민들은 가축을 가족처럼 사랑한다. 몽골 사내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말과 함께 뒹굴며 자란다. 가이드 말은 백마였는데 가이드와 같은 해에 태어나 이름도 똑같이 바트라고 불렀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말도 나이를 먹어 멀리 사는 친척에게 팔았는데 1년 만에 말이 혼자서 집으로 돌아왔더라는 것이다. 그가 친척에게 영문을 물었더니 뻐꾸기 때문이라고 하더란다. 뻐꾸기가 울던 날 말이 갑자기 풀을 뜯다 말고 하염없이 먼 곳을 바라보더란다. 미동도 없이 서있던 말이 쏜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한 건 저녁 무렵이었다고. 말은 먹지도 자지도 않고 이틀을 달려 고향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 회담을 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통일의 희망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실향민들이었다. 그것은 회담 얼마 전 강화에 있는 교동이란 섬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곳은 황해도 연백에 살던 사람들이 6·25 때 잠시 피난 왔다가 분계선이 그어지면서 피난민들끼리 모여 사는 섬이다. 그들의 고향은 바다 건너 빤히 보인다. 망원경으로 보면 집도 길도 밭을 가는 농부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부모 형제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말 못하는 말은 고향을 향해 달려갔지만 정작 사람은 철조망에 매달려 65년 동안 바라보기만 한 것이다.
“격강천리라더니/ 바라보고도 못가는 고향일세/ 한강이 임진강과 예성강을 만나/ 바다로 흘러드는데/ 인간이 최고라더니 날짐승만도 못하구나/ 새들은 날아서 고향을 오고가련만/ 내 눈에는 인간을 조롱하듯 보이누나/ 비오듯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려 허둥지둥 나왔는데/ 부모형제 갈라져/ 반 백 년이 웬 말인가/ 함께 나온 고향친구 뿔뿔이 흩어지고/ 백발이 돼 저세상 간 사람 많은데/ 남은 사람/ 고향 발 디딜 날 그 언제일까?”
이 글은 이병욱이란 분이 쓴 〈격강천리라더니〉라는 시다. 이 시는 아직도 피난 시절 모습 그대로인 교동시장 허름한 벽에 붙어있었는데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지 글자가 거의 지워져있었다. 나는 이 시를 보며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제는 지워져간 많은 실향민을 생각했다.
교동엔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가 있다. 그곳에 갔더니 갓 쓰고 도포 입은 할아버지가 가훈을 써주고 계셨다. 나는 거기서 떨리는 손으로 가훈을 들고 먹물을 말리는 분을 보았다. 나는 그 분을 보며 그 어떤 가훈도 쓸 수가 없었다. 역사 이래 인간이 겪었던 가장 혹독한 이별과 희망을 담은 가훈은 이랬다. -우리 민족끼리 평화통일-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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