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04-15 격주간 제875호> |
|
[이도환의 고전산책] 율곡이 말하는 정치지도자의 모습 |
"이익만을 생각하는 자는 우두머리일 뿐 임금이 아니다
者則惟利是謀(패자즉유리시모)"
- 《성학집요(聖學輯要)》 중에서
《성학집요(聖學輯要)》는 율곡의 학문과 사상을 집대성한 책이다. 사서오경(四書五經)을 모두 읽기 어렵다면 《성학집요(聖學輯要)》 한 권만이라도 읽기를 권하고 싶을 정도로 동양의 중요한 사상을 모두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정치에 대해서는 교과서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들이 모두 법정에 서는 최근의 일들을 보며 머리에 떠오른 것은 《성학집요(聖學輯要)》의 맨 마지막 부분에 율곡이 쓴 ‘후기(後記)’였다. 《성학집요(聖學輯要)》를 다 읽기 힘들다면 ‘후기(後記)’만이라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율곡이 《성학집요(聖學輯要)》 마지막에 붙인 ‘후기(後記)’를 살펴보자.
처음 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났을 때, 그들은 새와 짐승처럼 거칠게 살았습니다. 날고기를 먹고 벌거벗은 채 생활했으며 오늘과 같이 안정된 모습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문자도 갖지 못하였으며 모든 사람들을 바르게 이끌어주는 임금도 없었기에 매일 서로 음식을 다투고 싸워 혼란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이때 성인(聖人)이 나타나 지혜와 총명함으로 사람들을 바르게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바로 하늘의 마음임을 알았던 성인(聖人)은 백성들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따라 임금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임을 알았기에 백성들의 마음을 읽고 그것을 따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르게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이유이며 이것은 아무리 세상이 변하더라도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이러한 바른 이치가 점점 흐려져 바른 이치로 나라를 다스리는 게 아니라 바르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만 세상을 다스리려고 하여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임금이 자기 자신은 바르게 가다듬지 않은 채 백성들에게만 바르게 하라고 가르치니 백성들이 그것을 따르지 않게 되고, 임금이 바르고 현명한 사람들의 충고와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멋대로 세상을 다스려 혼란은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세상이 이렇게 흉하게 변하고 만 것입니다.
아, 바른 이치는 도대체 어디로 갔습니까. 바른 이치를 찾기 위해 멀리 갈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을 둘러보십시오. 산과 강, 나무와 풀들은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여전히 바른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모두가 바른 이치를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른 이치를 따르기만 하면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당당하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바른 이치 속에는 변화에 대응하는 올바른 방법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나태한 마음과 게으른 마음, 사사로운 이익만을 유지하려는 바르지 못한 마음이 변화와 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바른 이치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민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민심을 따르면 그게 바로 하늘이 정해준 바른 이치를 따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개혁하고 변화하라는 게 바른 이치입니다. 어제 했던 것을 그대로 이어가는 게 바른 이치라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변화와 개혁이 바로 예전의 성인(聖人)들을 따르는 길입니다. 그런데 왜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예전의 것을 회복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저 가만히 현재에 안주하며 편안하게 시간만 보내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 이 모든 것은 게으른 마음 때문입니다. 용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낡은 제도와 관습에 얽매이지 말고 바른 이치에 따라 당당하게 개혁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이 나라는 반드시 크게 일어나고 온 백성들은 모두 편안해지며, 이러한 안정이 오래토록 길게 유지될 것입니다.
〈이도환 / 문학평론가〉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