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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5 격주간 제87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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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착한나들이] -강릉 경포호 - |
두 개의 풍경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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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호텔 건물과 바닥을 드러낸 경포호 |
후배랑 기차를 타고 경포에 다녀왔다. 여행을 하다보면 우연히 가슴에 들어와 오래 지워지지 않는 풍경이 있다. 정동진에서 부채길을 걷고 싱싱한 회도 먹었지만, 돌아와 내내 눈에 선한 것은 엉뚱하게도 봄볕 쏟아지는 시골길에서 쑥을 캐고 경포호를 바라보던 순간의 풍경이었다.
여행 중 느닷없이 쑥을 캐게 된 건 후배 덕분이었다. 후배는 봄이면 꼭 꽃구경을 하고 쑥국을 세 번은 끓여 먹는다고 했다. 긴 겨울을 지나 먼 길 오는 꽃이나 쑥에 대한 예의라고. 바쁜 여행길에 한가하게 쑥이나 뜯는 것도 손에 흙을 묻히는 것도 싫었지만, 칼까지 준비해 온 후배 때문에 마지못해 쑥을 캐기 시작했다.
땅속에서 나온 쑥은 흙 하나 묻지 않고 향기로웠다. 나도 모르게 풀포기처럼 주저앉아 쑥 향기를 맡다보니 심신이 맑아지며 느긋해졌다. 지난해 떨어진 솔잎을 머리에 둘러쓰고 나온 개구쟁이 쑥도 있고, 돌멩이 틈바구니를 헤집고 나오는 씩씩한 쑥도 있었다. 캄캄한 땅속에서 나왔지만 모두 맑고 깨끗했고 나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나는 땅속 나라가 궁금해졌다. 누가 있어 봄이면 냉이랑 쑥이랑 씀바귀같이 몸에 좋은 걸 선물로 보내주는 걸까. 누가 있어 봄꽃들을 색색으로 물들여 이 세상으로 내보내주는 걸까. 나는 오랜만에 선물 받은 아이처럼 행복해졌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에 찡해졌다. 땅은 우리를 먹이고 품어주는 어머니다. 그러나 우리는 철없는 자식처럼 대지를 오염시켜 병들게 하고 있다. 나는 오랜만에 시골 길가에 앉아 어머니의 평화를 느꼈다. 순한 아이가 되어 눈을 감고 근심 없이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창문도 못 열고 우울하게 창밖을 내다보던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 하늘을 떠올리면서.
다음날 우리는 경포호(鏡浦湖)로 갔다. 노을이 질 때 경포호를 나는 사랑한다. 그래서 강릉에 가면 경포호를 찾게 된다. 그런데 경포호를 돌다보니 무슨 이유인지 시커멓게 호수 바닥이 드러난 곳이 보였다. 그곳엔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공과 죽어있는 물고기가 보였다. 순간 물고기 위에 하늘의 달이 겹쳐보였다. 경포엔 달이 5개라고 한다. 하늘에 하나, 바다에 하나, 호수에 하나, 눈동자에 하나, 그리고 술잔에 하나씩. 그런데 호수에 떠야 할 달이 죽은 물고기 위에 겹쳐 보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이어 온난화의 기후변화로 죽어가는 동물들의 슬픈 눈동자가 떠올랐다.
멸종되었거나 사라져가는 동물 사진을 찍어 전시하는 조엘 사토리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이다. 그는 인간의 무한한 탐욕으로 당면한 오늘날의 위기를 절규한다. 동물을 살리는 길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고. 천배의 속도로 동물들이 사라지고 있으며, 동물 중 절반은 이번 세기 안에 멸종될 것이라고. 하나의 종이 사라지면 곧이어 다른 종에게도 종말이 오며, 결국 인간의 차례가 될 것이라고.
여행에서 돌아오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종종걸음치고 있었다. 중국에서나 필요했던 것이 이제 우리의 것이 된 것이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걸으며 눈부신 햇살 아래 쑥을 캐던 풍경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는다. 그러나 이내 밀물처럼 경포호가 밀려와 내 웃음을 지우는 것이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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