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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5 격주간 제87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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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탐방] 4-H이념을 되새기며 살아온 인생 역정(歷程) |
김 남 수 회장 (전북 장수군4-H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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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수 회장은 4-H인으로 살면서 얻은 지혜를 장수군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
얼음이 녹아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 지나, 새해 농사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농업인들이 북적대는 전라북도 장수 천천농협 상담실에서 김남수 장수군4-H본부 회장(55·전북 장수군 천천면 춘송길)을 만났다.
4-H활동을 통해 배운 나의 힘
천천면 농촌지도소 소장의 권유로 중학교 졸업 후부터 4-H활동을 시작해 4-H와 인연을 맺은 김남수 회장은 13년 동안 장수군4-H회원으로 활동하며 부회장직을 수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군내 7개 읍면 체육대회에서 3년 연속 우승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라고 말문을 연 김 회장. 그는 1964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4-H활동을 통해 살아가는 방식을 배웠다고 한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 없이 임차농지 1만6500㎡(5천 평)에서 사과를 재배해 자녀 셋을 대학 졸업시켰다. 그리고 자신도 못 다한 대학졸업의 꿈을 이뤘다.
“네 명이 한꺼번에 대학에 다닐 때는 3~4년 동안 해마다 삼천만 원씩 빚을 지기도 했습니다”라며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는 김 회장은 정직과 근면함으로 이제까지 버텨 왔다.
현역 4-H회원을 마치고 1992년에 농업경영인(당시에는 농어민후계자)으로 선정되어 1994년에 면단위 총무 2년, 군 단위 총무 8년, 2005년에는 한국농업경영인장수군연합회장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군 회장직을 수행하며 이경해 열사 묘역 조성, 한국농업연수원 유치에 큰 역할을 했으며 현재 장수군4-H본부 회장직을 7년째 맡고 있다. 이 같은 이력은 지역사회에서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1남 2녀를 둔 김 회장의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4-H이념이 통했다. 4-H회원이던 자녀 셋이 대학생이 되어서는 생활비 모두 자기 손으로 벌며 대학을 졸업하고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해가는 모습을 볼 때 4-H활동을 시키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김 회장.
“제 좌우명은 정직입니다. 땅이든 사람이든 정직하게 대하면 언젠가는 충실한 결실을 맺는 법이지요. 영농에 종사하며 방송통신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고 지역사회 단체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내의 내조 덕입니다. 60세 까지만 열심히 일해서 모아둔 돈으로 살려고 생각한 적도 있는대요. 지금 건강하니까 더 일할 수 있다는 아내의 말에 80세까지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라며, 김 회장은 4-H인으로 살면서 얻은 지혜를 장수군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특히, 농민단체 지원조례 제정을 통해 농산물 최저 생산비 보장이라든지, 4-H회원 활동 지원, 농업경영인연합회 지원, 농민회 지원 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기초부터 다지는 회원육성 필요
현재 장수군4-H본부 회원은 300여명으로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지만 지도기관과 유기적으로 협력해 장수군4-H연합회가 주축이 되어 추진하는 야영교육, 경진대회를 지원하고 있다. 이 행사를 통해 청년농업인4-H회원, 학생4-H회원, 4-H본부회원의 결속을 다지고 있다.
특히 김 회장은 청년농업인과 학생4-H회원 활동 활성화를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과 열정을 갖고 도울 길을 찾고 있다.
4-H활동을 통해 터득한 김남수 회장의 정직, 근면, 성실함을 청년농업인4-H회원뿐만 아니라 학생4-H회원들이 이어받아 더욱 더 발전하는 장수군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신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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