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15 격주간 제654호>
<이규섭의 생태기행> 260여년 전 조성한 다목적 솔 숲

경남 하동송림

사계절 푸른 소나무는 장생을 염원하는 생명의 나무다. 조선시대 궁궐이나 가옥은 대부분 소나무로 지었고 500여년 동안 소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송목금벌(松木禁伐)’의 산림정책을 펴왔다. 예부터 청송(靑松) 백사(白沙)가 어우러진 하동송림엔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260여년 전에 조성된 다목적 하동송림>

경남 하동 송림(松林)은 남도 500리 길을 휘감아 흐르는 섬진강의 하얀 백사장과 어우러진 한 폭의 산수화다. 전라도 땅 다압과 경상도 하동읍을 잇는 성진교에서 바라보면 백사장을 따라 띠처럼 이어진 울창한 송림이 한 눈에 들어온다.
솔숲에 들어서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뿜어내는 솔향기에 푸른 기상이 서리어 있다. 각선미를 자랑하며 쭉쭉빵빵 뻗은 소나무가 있는가하면 휘어지고 구부러진 토종 소나무들이 어깨를 비비며 강바람을 막고 있다. 거북 등 같은 적송의 수피(樹皮)는 장군의 갑옷 같다.
사계절 푸른 소나무는 장생을 염원하는 생명의 나무다. 조선시대 궁궐이나 가옥은 대부분 소나무로 지었고 500여년 동안 소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송목금벌(松木禁伐)’의 산림정책을 펴왔다. 예부터 청송(靑松) 백사(白沙)가 어우러진 하동송림엔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의 휴식장소와 자연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동송림은 조선조 영조 21년(1745년) 도호부사 전천상(田天祥)이 광양만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섬진강바람에 모래가 날리는 것을 막고, 홍수피해를 줄이기 위해 조성한 다목적 인공림이다. 260여년 전 지방관리가 자연을 이용해 재해를 방지한 탁견이 돋보이고 백성 사랑의 목민(牧民)정신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다. 경남도기념물 제55호로 지정돼 보호받다가 숲의 조성 배경과 역사적 중요성 등이 인정돼 2005년 2월 천연기념물 제445호(지정구역 4만5481㎡와 보호구역 1만1758㎡)로 승격되었다.

<갈마산 하동공원의 왕대나무숲과 산책로>

원래는 현재 하동종합고등학교와 하동중·하동여자고등학교, 광평마을 일부를 포함했던 큰 면적이었으나 홍수 피해로 제방을 쌓으면서 송림은 둘로 나뉘어졌다. 제방 안쪽은 주거지와 학교가 들어서고 현재의 숲만 남았다. 한 때 1천500그루의 노송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으나 50~300년 된 소나무 750여 그루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송림에는 무예를 닦는 궁도장(弓道場)과 하상정(河上亭)이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에는 가야, 백제, 신라가 세력다툼을 벌이던 곳이고 고려시대에는 왜적의 노략질이 극심했던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도 왜란으로 큰 피해를 보았고, 현대사에서도 빨치산과 토벌대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등 ‘전란의 바람’이 심하여 무예를 닦아 왔던 터다.
관광시즌이 지나가면 솔숲은 심한 몸살을 앓고 말라죽거나 잎이 시드는 경우도 많다. 휴식년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하여 출입제한 등 획기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소나무 에이즈 재선충의 피해를 막는 것도 과제다. 폭 100m가 넘는 백사장은 섬진강 모래채취로 밀물 때면 반은 물이 찰 정도로 해마다 줄어드는 것도 안타깝다. 강물의 오염으로 섬진강 재첩도 상류로 터전을 옮겨가고 있는 실정이다.
근래에 송림과 백사장 사이에 나지막한 제방을 쌓으면서 외래종인 히말리야시다(개잎갈나무)와 버드나무, 잡목 등을 심어 놓아 토종 송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성장속도가 빠른 히말리야시다는 20년쯤 되면 한아름이 되어 송림을 가릴 수도 있어 베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발길을 돌려 갈마산(渴馬山) 하동공원에 오르면 아름드리나무들이 빼곡하고, 왕대나무 숲길과 운동시설 등을 갖춰놓았다. 섬호정(蟾湖亭) 누각에서 바라보면 송림을 감싸고 흐르는 섬진강이 호수처럼 펼쳐진다. 강은 생명의 젖줄이고, 숲은 삶의 안식처다.
 〈이규섭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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