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평화 안에서
나에게 가을은 외로운 계절이며, 상념의 계절이며, 방황의 계절이다.
왠지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면 나만 혼자인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바람 불어 옷깃을 여밀라치면 나만이 고독한 것 같아 자연을 벗 삼지 않으면 이내 마음의 병이 들어버릴 것만 같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데 아마도 난 전생에 남자가 아니었나보다.
내가 유난히 가을을 좋아하고 기다리는 이유가 있다.
가느다란 이파리 출렁거리며 기우뚱거리는 길가의 코스모스가 예쁘고 물기없는 듯 메마른 억새풀 꽃이 고개 숙이며 흐느적거리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내 마음을 닮은 것 같아 괜시리 눈길이 머물고 그러기에 가까이서 보듬어주고픈 동정아닌 동정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떠난다.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너를 만나러 간다.
아우성치는 인파에 몰려 꺾어진 모습을 보지 않으려 일찍 다가간다. 발자욱 소리조차 웅성거리지 않기 위해 아무도 몰래 그곳에 머물다 오리라.
등허리엔 배낭을 메고, 머리엔 흰 모자 꾹 눌러쓰고, 긴 남방 너풀거리며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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