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어떻게 잘 지내고 계신지요? 2004년? 11쯤으로 기억 됩니다. 저희학교가 제6회 전국4-H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사례발표자로 참석한 제 1회 전국의 4-H핵심학교 교장·교감 연찬회시에 대전 유성에서 처음 뵈었지요. 아마도 중앙연합회장출마를 마음 잡수시고 본부의 젊은 선생님들과의 만남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그 당시 유성에서 가까운 둔산동에서 살고 있었기에 관심이 남달랐으며, 님에 우직스러운면서도 뚝심이 있으신 서회장의 첫인상은 믿음직스러웠답니다.
그 후 25대 회장을 역임하실 때 뵐 기회가 없었으나 들리는 소문은 우리 지도교사협의회에 약간의 불만과 불협화음의 소리를 들었을 때, 난 대화의 부족이라 서로 오해가 있구나 싶더이다. 우리 4-H지도교사들은 현장에서나 어디 공식석상에서나 단 한 번도 영농4-H연합회를 경시한 적이 없이 서로 상생의 길을 걸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기에 분명 회원 수가 줄어드는 현상에서의 아니 본부의 정책방향이 학교4-H쪽으로 기우는 듯한 인상에서의 오해소지가 분명 있었겠다 싶더이다.
지난 2월23일(금요일)저녁에 대전광역시 4-H후원회장 이·취임식을 마치고 후원회와 지도공무원 그리고 지도교사 간 척사대회가 대전광역시농업기술센터에서 있다하기에 저는 수안보에서의 1박2일의 총회를 마치고 피곤한 상태에서도 혹이나 뵐 수 있을까 하여 늦게 참석을 하였지요. 사무국장께 여쭙고 현 감사님께도 묻고 하였으나 어찌 연락처를 알고 있는 분이 없더이다. 하여 부득이 이곳에서 공개적으로 개인적인 궁금증을 묻겠습니다.
님의 임기말 한국4-H본부에서 중앙연합회회장단과 본부직원들과 우리 지도교사협의회 회장단과의 만남에서 이영래회장의 임기연장 기도 건에 깊이 의논하고 대책을 토론할 적에 서회장께선 끝까지 죽어도 그런 일은 막겠다하였지요? 지도교사협의회에서는 사전에 중앙임원회의에서 연임을 반대하자는 결론을 가지고 그 자리에 참석하였지만 선생님들의 조심스런 대응에 참으로 답답하였을 겝니다. 속시원스레 힘을 실어 드려야하는데...하는 개인적인 생각이었고요.
저는 그 당시 모대리가 사표를 쓸 각오로 현 회장의 임기연장만은 막아야한다. 우리 직원들 모두 사표를 쓸 각오가 되었는데 왜 선생님들이 미온적인지 이해가 안된다며 아쉬움을 토합디다. 하여 그 님에게 이리 말했죠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이란 말을 인용하면서 그런 각오라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 후 우리 4-H핵심 주체인 중앙연합회장, 교사협의회장 본부직원 대표의 이름으로 성명서가 채택이 되고 그 뒤 농촌지도기관의 담당자연합회에서도 성명서를 내시고 하여 철통같던 이사회의 원로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극적으로 연임안건을 부결시키는 쾌거를 이루는데 중심에 있었소이다. 또한 이사회의 결의에 의하여 비상근명예회장을 추대하는 7인 위원 중 한사람으로 선임이 되어 활동하셨지요?
하여 묻겠습니다. 첫째 명예회장추대위에서 추대하기로 결의가 되었는데 어떻게 총회에서는 추대위의 의견이 무시가 되고 선출로 전환(혹자는 쿠데타로 표현)이 되었는지요. 그 과정을 알고 싶습니다.
둘째 혹자의 말에 의하면 절차상 현회장의 출마에는 하자가 있었다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상의 하자인지 님께서는 알고 계신지요.
저 개인적으로 그 당시 추대위 7인의 이사 중 서회장님만이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1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우매하게도 과거사를 묻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작금의 본부에서의 작태를 보면 가슴앓이를 하면서 원근거리에서 오르내리면서 뜻있는 인사들을 찾아다니면서 노력했던 결과가 바보짓이라 비웃음거리가 되고, 그 노력으로 인해 4-H발전에 저해가 되는 결과가 되었고, ‘좋은 것은 더욱 좋게, 실행으로 배운다’라는 우리의 모토에도 반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그 바보스런 행동들에 제가 앞장을 섰다는데 제가 제자신을 용서 못하겠나이다. 부디 추대위활동과 회장의 선출당시의 상황을 알려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입니다. 잘못된 역사를 바르게 세워야 미래가 밝지 않을까요?
2007.2.25 대전 삼성동에서 주지민(010-2328-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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