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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4-H지도교사협의회 임원선생님들께 올립니다.
작성자 주지민 조회 2597 등록일 200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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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승맞은 이 가을의 문턱에 앉아서 
지난 나의 삶을 되돌아 보며
학교생활의 즐거웠던 일과 전국아름다운학교에 선정되었을 때의 기쁨과
4-H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의 변화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느꼈던 보람과
어쩜은 다시 찾을 수 없는 그 간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더 가슴에 담아보려고
오늘 교정의 철길을 비를 맞으면서 몇컷 담아서 주저리 넋두리나 해볼라고
다시 자판을 두드립니다.




난 대둔산자락 시로봉이 앞에 보이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396번지에서
1957년 3월 3일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짓날에 6남 1녀 중에 3남으로
부지런하신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유년시절을 산좋고 물좋은 시골에서 보내고 바로 이웃인 양촌에서 9대조부님부터
사시었던 또다른 대둔산자락에서 철이 들기 시작을 하였지요.
당시엔 모두 가난하였기에 그다지 불평도 없었고 조금 앞선 생각을 한 님들은
고향을 등지고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객지로 나갔던 시절이었답니다.




나는 중학교를 마치고 갑자기 부친의 친구분의 당시 쌀방앗간 사장의 배신으로 처한
가세가 기울어 부득불 6형제의 누군가는 농사를 지어야되지않겠나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에 흔쾌히 1년간을 농사경험이 있었답니다.^^* 졸업하는 해 10월31일 무작정
상경을 하는 결단을 내린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요.



나름대로 사연도 많고 고생도 많이 했지만 항상 희망과 목표를 향해 노력이라는 끈을
놓지않고 후에 남동생 셋을 모두 함께 서울생활하면서 꿈을 키웠답니다.
당시엔 서울엔 전학이 안되어서(설인구억제정책) 동생들은 인천에서 학교다니고 난 설에서 다녔기에
주로 영등포, 오류동, 신앙촌 등 중간지점이 우리의 생활터전이었지만
처음 홀로 살적엔 안양읍, 동대문, 제기동 등지가 안식처였답니다.




지금은 탕자의 생활을 하지만서도 당시의 나는 참으로 투철한 신앙심으로 목표를 향해서
정도를 걸었다고 자부합니다.
야간고등학교를 다녔기에 독서신문이라는 주간지를 시내를 누비면서 팔은 돈으로 학비도
대고 학용품도 사서 공부를 하였지만 남보다 열심히 뛰다보니 수입도 짭짤하여 친구들
수업료도 대신 내주기도하였고 고2때 수학여행비가없어 함께하지 못하는 친구의 수학여행비도
대신 내주어 함께하는 기쁨도 누렸기에 지금도 성남의 한 전화국에서근무하는 친구는
친 형제보다도 가깝게 지내고 있기도 합니다.




만학도인(인하대, 회사, 세종대 등) 늦은 졸업으로 1987년부터 교직에 입문하여 참으로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였습니다. 게다가 좀 늦게서야 학교현장에서 4-H회가 있다는 것을 안 나는
반 어거지로 95년부터 부서활동을 빼앗아 맡아했지요.
당시 울 전임 교장샘은 인재를 적재적소(당시 환경부)에 배치한 성공케이스라하시면서
기회있을 적마다 절 앞세워 자랑하시는 것이 몹시도 부담이었지만 속으론 싫지않았답니다.




암튼 교육환경개선활동에도 울 4-H회를 앞세워서 소외받고 무관심해 했던 사랑결핍증의 학생들과
열심히 하다보니 다른 학생들보다 교단에서 교우들 보는데서 상을 받고 칭찬을 들으니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었답니다.
전 아무리 하찮다생각하는 대회에 참가하여 상을 받아도 또다시 전교생들앞에서 다시 교장선생님이
수상을 하도록 하였지요. 중학시절까지만해도 남 상받을 때 박수나치던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어쩌다 재 시상이 늦을라치면 졸졸 따라다니면서 언제 상을 주냐며 아우성이었죠 ㅋㅋ
그래 담주 월요일 전체조회시간에 시상한다고 전하면 기뻐서 어쩔줄 모르던 님들이 생생합니다.^^*




나는 이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간혹 동창회에서 만난 몇 친구들의 모습을 볼 때를 제외하곤....
형편없던 친구가 어느날 떵떵거리고 거들먹 거릴 땐 세상에 눈을 다시 떠보면서
어데서 잘못이 있는겐가? 하며 친구한테도 사기치고 평소 믿음이 가지않던 님은
동창회비아닌 찬조금으로 사람기죽이는 모양에서 쬐끔은 범생이가 다 옳은 것은
아닌가하고 생각하다가도
결코 나의 삶을 후회하지않았답니다.



그런데 제가 요즘 많은 딜레마에 빠져서 삶에 의욕을 상실하고 과연 어떻게 처신하고
행동을 해야하는지를 온통 머리속엔 정의는 반드시 승리해야한다하면서도
교사로서의 양심을 지키며 다른 님에게 누를 끼치지말아야하는데 생각에 미치면
또다시 머리가 어지럽답니다. 한달이면 끝났어야 할 일을 이리도 오랫동안 끄는 이유가
어데서인지 아십니까? 저는 그 해답을 알고있지만 각자의 처한 또한 생각이 다른 님들을
존중하였기에 지금 제가 진퇴양난을 격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시는지요.

반드시 정의는 바로 서야합니다.(5공시절 정의사회구현하고는 차원이 다름)
한국4-H회는 지금 풍전등화처럼 아주 위태롭습니다.
애정어린 이 단체에 많은 분들이 아무생각없이 그냥 그날의 주어진 것을
하면서 별 관심은 없읍니다만, 우리 지도교사님들은 이러시는 게 아니지요.
특히나 그간 본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아낌없이 받으셨던 전현직중앙임원분들은
이리 방관해서는 아니될꺼라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물러갑니다. 이 홈피에도 없을 것이고 무언으로 지켜보면서
한달후에 나의 행동은 저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실겝니다.
그동안 맺은 인연 마음속깊이 간직하면서 님들의 행복을 빕니다.

비오는 날 교정에서 어리석은 넘이.......












이종무 사진으로 보이는 꽃과 나무가 싱그럽습니다.
구석구석 손길이 닿아서 이겠지요.
화초 포기마다 애정이 느껴집니다. [2007-09-07 오후 2:27:12]
임용민 양보라 참좋은이야기지요..우리 주지민 선생님..무슨 이득이 있다고 이렇게 몸부림 치시면서까지 지신을 희생하시는지...4-ㅗ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한번더 생각을 할수있게해주심이 너무나 감사할 뿐입니다..지금은 비록 의견일치가 안되고 혼란스럽더라도 꼭 아름다운 4-H 활동이 전개되는날이 올겁니다..그날을 기약하며... [2007-09-07 오전 2:54:25]
민경숙 영양가 없은 가을비는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늦은 밤 음악들으면서 주지민샘 글을 읽으니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어디서 부터 잘못 되었는지... 누가 잘못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략 이곳 게시판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우리 4-H 멋진 샘^^ 얼굴을 못 볼것 같아 아쉽습니다.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
좋게 해결하면 될 것을....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이렇게 아귀다툼을 해야 하는 것인지...회의가 듭니다.
서로가 양보하고 용서하면 될 것을.... 슬프고 또 슬픕니다. 노래는 더 구슬픕니다. [2007-09-05 오후 11:26:02]
 

간단의견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 파일
8923 본부 젊은 직원분들과 4-H를 사랑하는 분..[2] 주지민 2007.09.07 2230
8922 한국4-H본부 조직팀장 보시오[5] 주지민 2007.09.07 2234
8919 함부로 삭제하지마시오.[2] 김윤배 2007.09.06 2071
8914 한국4-H지도교사협의회 임원선생님들께 올립..[3] 주지민 2007.09.05 2597
8897 한국4-H본부회장님과 사무총장님께[8] 주지민 2007.09.04 2522
8896 주지민회장에게 이 글을 -1[3] 최규진 2007.09.03 2436
8894 민경숙선생님께 펌글을 보냅니다.[4] 주지민 2007.09.02 2545
8893 제가 즐겨보는 카페에서 퍼온 좋은 글 ...함..[3] 민경숙 2007.09.02 2514
8890 주지민회장님께 이 글을[5] 최규진 2007.09.01 2625
8886 들꽃사랑 작품 전시회가 열립니다.[7] 최윤창 2007.08.31 2315 리플렛 맢.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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