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 감사, 사랑안에서 어쩌다 오랜만에 쓰다 보니 주저리 주저리 핵심없는 세상사만 나열하였다고 한 말씀이네요. 전 이번 여름방학 중 몽골에서 비행기로 1시간40분 거리(서울에서 북경 거리가 아닌가 합니다)를 몽골 초원의 길로 3일 주야로 달려 가보았습니다. 지도에는 국도의 표시가 있지만 길도 없고 이정표도 없이 끝임없이 이어지는 자동차 바퀴 자국만이 초원을 수없이 이리 저리로 가로지르고 있었소. 처음에는 끝이 안 보이는 지평선 초원에서 확 트인 마음으로 수많은 양, 소, 말, 염소, 야크 등을 바라보며 수없이 카메라의 샤터를 눌렀지요. 그런데 그것도 반나절이지 시간이 흘러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하니 시들. 이 길을 먼저 간 선배의 글에 보면 갈 수 록 자신의 모든 것을 이 초원에서 내려 놓고 온다는 내용을 보았소. 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엔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루 17시간 이상 초원을 달려가는 나.( 현대 스타렉스로 이동함) 처음에 좋아서 환호, 그 다음 날에 약간의 불평, 그리고 그 다음 날에 침묵만이 초원을 가로지르고 있었소. 그렇게 5일 이상을 달려 보았지요. 그럼 거기에 서 있는 나에겐 무엇이 남아있겠습니까. 끊임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나의 모습. 그것을 아는 순간 나는 50하고도 꺾어진 삶의 모든 것을 벗어 버리고 있더이다. 우린 때로 산에 올라 가보고 또는 비행기로 지상을 보면 문득 한 순간 철학자가 되질 않겠소. 그것도 순간의 시간 속에서 말이요. 그런데 5일 주야로 그렇게 있으면 순간의 철학자가 아니라 인류를 빛낸 철학자의 수준에 가 있질 않겠습니까. 가족들이, 부모 형제가 알면 얼마나 실망할 줄 모르겠지만 난 아니 우리 같이 간 4명 모든 것 다 버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연이 나요 내가 자연이요 하늘의 구름이요 지나쳐가는 바람인 것을. 우수개 소리로 우리끼리 한 말. 이러다 나를 버린 다 못해 마누라도 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웃었소. 기독교인인 차경남회장과는 하나님도 버린 것이 아닌가 하여 주기도문도 외워 보았지요. 난 주회장의 말에 토를 달거나 자의로 해석하지는 않겠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지상에서 주회장에게 마지막으로 쓰는 글이 아닌가 합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교사직을 버리는 순간 다만 과거에 4-H를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 남아있지 제도권 속에 발언권이 없어지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제도권 속에서 하셔야 함을 나는 지난 서울에서 배웠습니다. 물론 재야에서도 할 수야 있겠지만 그건 오로지 자연인 주지민이가 하는 것 뿐 임을 아시기 바라며 세상사에서 마지막 까지 가는 것이 송사가 아닌가 합니다. 난 무역학을 전공하였는데 수출입시 클레임이 발생하면 마지막 까지 가는 것이 재판입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누구에게도 좋은 결과를 내 놓지 못하지요. 민주적인 방법. 대화와 타협 그리고 개혁이 한 단계 승화 시키는 것임을 대한민국 최고 지성인이라 자부하는 교사가 모를리 없겠지요. 불의를 보고 참으라는 것은 아니요. 그러나 그 해결 방법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겐 아무런 권한도 힘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우린 지난 10년의 세월 속에 학생을 위하고 4-H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하였질 않았습니까. 더 이상 지상에서의 토론은 여기에서 끝을 맺고 주회장은 소주 한잔( 나는 사이다 한잔 그렇지만 소주잔으로 마시겠소.) 하면서 못 다한 이야기 마무리 지어 봅시다. 칼은 때론 집어 넣을 줄 아는 자가 진정한 대장부라 생각되오. 뺏으니 무라도 잘라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더이다. 등촌동에서 최규진이가 주지민 형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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